다섯 명이었던 가족이 네 명이 된 지 어느새 10년째이다. 10년 전 사고로 아빠가 죽은 뒤, 멈춰버린 듯한 시간 속에서 우리 가족은 그렇게 흘러갔다.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9년을 더 일했고, 정년을 채워 퇴직했다. 퇴직 후 맞이한 긴 시간 속에서 엄마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여유에 적응하지 못하는 듯했다. 처음에는 전화가 정말 자주 왔었다. 출근할 때도, 퇴근할 때도, 자기 직전에도. 그때마다 나는 엄마가 느낄 외로움을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줄곧 엄마가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연애는 무슨 연애냐고 웃으며 넘겼지만, 나는 정말 진심이었다.
언젠가의 저녁, 엄마와 맥주 한 잔 하며 엄마의 연애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엄마는 자신이 연애하면 아빠의 자리를 빼앗긴다고, 아빠를 지우는 것이라고 여겨 딸들이 상처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음이 담긴 대답을 하려니 어쩐지 쑥스러웠다. 맥주잔을 쥔 채 조금 망설이다가,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엄마, 나는 새로운 아빠가 생겼으면 하는 게 아니고, 엄마의 남자친구가 생겼으면 하는 거야. 엄마 곁에서 엄마가 외롭지 않고 더 행복할 수 있게 엄마를 사랑해 줄 남자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거지. 우리가 주는 사랑이랑은 분야가 다르잖아."
엄마는 한동안 말없이 누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실이었다. 엄마 곁에 엄마의 시간을 함께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늘 생각했다. 인생은 길고, 엄마는 아직 젊으니까. 엄마에게는 우리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따뜻하게 채워줄 사람이 있다면, 엄마가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아빠가 아닌 엄마의 남자친구가 생겼으면 좋겠어."
회사일로 바빠 굉장히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왔다. 그런데 나에게 이것저것 말하는 엄마의 표정이 꽤나 밝았다. 지나가는 말로 남자친구 생겼냐고 물었는데,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장난스럽지만 끈질긴 나의 추궁에 엄마가 입을 열었다. 엄마는 가족이 다 같이 모이는 추석 때 말해주려고 했다고 하면서 수줍게 미소 지으며 속삭였다. "엄마, 남자친구 생겼어."
엄마는 어떻게 만났고, 어디서 만났고, 어떤 사람이고, 얼마나 살뜰히 자신을 챙겨주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마치 첫사랑을 이야기하는 소녀 같아서 너무 귀여웠다. 우리 엄마가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구나.
엄마는 이런 감정을 정말 오랜만에 느껴본다고 했다. 우리 아빠는 낙천적이고 사람을 좋아하며 술을 좋아하는, 호쾌한 성격이었다. 그에 비해 새로 만난 분은 섬세하고 다정한 편이라고 했다. 이것저것 말하는 엄마의 눈빛엔 ‘이래도 되나’하며 나를 살피는 모습과 사랑에 빠진 모습이 공존했다.
엄마의 얼굴을 새삼스레 바라보았다. 원래 동안이었던 엄마였기에 이제야 흰머리가 나고 있었다. 나는 순간 충동적으로 엄마 손에 돈을 쥐어주었다. "엄마, 염색 좀 해! 연애도 시작했겠다, 아저씨를 홀리자!" 엄마는 푸하하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소녀 같은 순수함과, 이제야 누리는 새로움의 설렘이 함께 담겨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뻔했다. 아빠를 잃고 우리에게 티 내지 못했을 슬픔이 많았을 엄마의 얼굴이 밝아진 게 좋았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으니까. 행복한 엄마를 보고 있자니 나까지 행복해졌다. 귀여운 우리 엄마.
계절상은 가을이지만, 엄마는 새로운 봄날을 맞이하고 있다. 물론 연애라는 것이 늘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연애 초보인 엄마가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상황이란 게 어찌 흘러갈지 모른다. 헤어질 수도 있고, 때로는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무엇인가를 해줄 수는 없어도 딸이자 친구로서,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곁에서 함께할 것이다.사랑하는 우리 엄마가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길, 그리고 그 길에 내가 작은 햇살이 되기를 바란다. 어찌 보면 서툴 수 있는 우리 엄마의 귀여운 연애가 오래도록 행복으로 이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