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받은 종이빨대에는 묘한 무게감이 있었다. "환경을 위해 우리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빨대 하나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종이빨대야말로 최악의 발명품 아니에요? 맛도 이상해지고, 환경에도 딱히 유익하지 않대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종이빨대 만든 사람을 콩 때리고 싶어요.”
같이 간 팀원분의 신랄한 종이빨대 비판론을 들으며 생각했다. 처음엔 선하디 선한 마음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플라스틱 빨대의 문제를 고민하며 진지하게 찾은 대안이지 않았을까?
의도를 생각하니 잠시 빨대의 불편함도 잊혀지는 기분이었다. 커피 맛이 묘해지고, 빨대 끝이 눅눅해져도 "이건 환경을 위한 일이니까"라는 마음으로 참게 되었다. 의도가 선했으니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것 아닐까.
출처: 잔망루피. 종이빨대를 먹을 때면 이런 표정이 지어진다.
하지만 간사하게도 커피를 중간 정도 마시자 결과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앞에는 눅눅해져 버린 종이빨대가 남아 있었다. 결국 쓰레기통으로 향할 빨대였다. 종이빨대가 플라스틱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니, 이게 정말 환경에 도움이 되는 선택인지도 의심스러워졌다.
'결과적으로 종이빨대는 실패 아닐까?'
선한 의도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과적으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동기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종이빨대는 가치 있다고 평가할 것이다. 환경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작은 물건이니까. 하지만 결과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종이빨대는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평가할 것이다. 플라스틱을 대체하지 못했고, 오히려 더 많은 자원을 낭비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으니 말이다.
종이빨대가 던지는 질문은 내가 받은 무수히 많은 선한 의도들을 떠올리게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원치 않는 도움을 받았던 순간들 말이다. 상대방은 나를 돕겠다는 마음으로 한 행동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불편함을 느꼈던 기억들.
반대로, 결과적으로는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했어도, 그 마음만으로도 고마웠던 기억도 있다. 때로는 선한 의도 자체가 충분히 의미가 있을 때도 있고, 반대로 결과가 중요했던 순간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중요한 건 무엇일까. 선한 의도일까, 아니면 성공적인 결과일까? 얼핏 그 둘은 대립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사이에는 수많은 복잡한 순간이 존재한다.
종이빨대는 완벽하지 않다. 불편하고, 환경에 대한 기대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실패한 발명품이라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선한 의도는 결국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다음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의도와 결과는 항상 대립한다. 하지만 때로는 불완전한 의도와 불완전한 결과가 함께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카페를 나서며 생각했다. 내가 살면서 선택하는 모든 것에도 의도와 결과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갈등 속에서 더 나은 선택을 고민하고 시도해 보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다음엔 집에 가지런히 처박혀 있는 스테인리스 빨대를 챙기기로 다짐했다. 종이빨대가 부족한 결과를 남겼더라도, 그것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우리의 몫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