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는 무사히 잘 보냈나요?
무사한지 묻는 게 더 적합할 듯싶네요. '잘 지내냐'라고 묻기엔 올해 들어 그런 적을 손에 꼽을 정도니, '잘'이란 단어는 긍정을 내포하면서도 폭력적인 단어 같아요. 알차야 할 것 같고, 바빠야 할 것 같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할 것 같고....... 재촉하며 채찍질하는 느낌이랄까요. 항상 그 결과는 시퍼렇게 멍든 나 혼자만 있었는데 말이죠.
오늘은 태풍의 직접 영향으로 비바람이 매섭게 몰아쳤어요. 일어나 보니 거실이 물바다가 되었더군요. 창틀엔 빗물이 고여 흘러넘치기 직전이었어요. 오랜만에 나갈 데 없고, 찾는 이 없는 처지가 괜찮다 여겨졌네요.
물은 계속해서 흘러넘치고, 빨아들일 수건과 걸레도 없어서 하루 종일 빨래를 돌렸어요. 습해서 마르지도 못하는 수건들의 물을 다시 빼내고 비누 옷을 새로 입혔어요. 바람소리와 빗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어둠 속, 출근하는 사람들을 생각했어요. 그들은 나를 부러워할까요?
빨래가 마르려면 빨라봐야 내일이 될 것 같아요. 나도 잘 말라 보송보송해지려면 지금 서 있는 기다림이 있어야겠죠? 스스로 말해야 된다지만 남이 해주는 말이 최고의 안정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