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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니 Jan 08. 2019

말의 뉘앙스

느림이 잘못은 아닌데 이상하게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다. 보통 말에서 비롯되는 오묘한 느낌이 악의는 없지만 악의로 느껴지게 만든다. 같은 뜻이어도 표현에 따라 상처가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는 습득에 있어 느린 편이다. 머리와 몸이 따로 놀아 예열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상대방이 답답해하지만 난 그가 느끼는 것보다 2~3배 더 답답하다. 


때는 바리스타 과정으로 카푸치노를 배우던 시간이었다. 에너지가 맞지 않는 사람과 한 공간에 있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가르치는 사람도 자신만의 스타일이 달라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A가 "그래, 연습 땐 그렇게 해야 돼."하고 실수를 격려해주었다면, B는 "연습 땐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안 하려고 해야 돼요."하고 실수를 제한했다. 


실수와 실패를 많이 경험하면 할수록 성장한다고 배웠다. '감을 잡는다', '느낌이 있다' 이런 뜬구름 잡는 듯한 표현들이 체감되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일 테다. 실수는 내가 노력해도 생긴다. 그런 점에서 B의 말과 시선은 연습 내내 거슬렸다. 


감시하는 시선과 날카로운 말투, 예상치 못한 실수에 비웃는 웃음, 체념한듯한 표정과 끄덕임....... 배우는 입장이니까 인정하고 넘어가자고 너그럽게 생각하려 해도 도장처럼 찍힌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혼자 정리하며 과정을 터득할 시간이 필요한데 B가 쳐다보며 훈수를 넣으니 되던 것도 안됐다. 답답한 마음에 내 손을 잡아 이리저리 휘저은 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그 순간 주변의 공기는 진공상태가 됐다. 알게 모르게 흔들린 감정은 자책이 되고, 망상이 됐다. 남 탓하기 싫은데 하게 되는 기분을 알기나 할까.


뜨겁다고 했는데 안 뜨거운데라고 반문했던 당신을 보니 우린 서로의 온도부터가 달랐나 보다. 말의 뉘앙스, 그 하나만으로 일희일비하는 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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