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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니 Dec 15. 2024

말을 멈칫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착한 대화 콤플렉스


'누군가가 스쳐 지나가며 한 말에 마음이 와장창 깨진 경험이 있다'는 엄지혜 작가의 추천사에 공감했다면, 그로 인해 손절까지 해봤다면 내가 예민한 것이 아니라 언어 감수성이 높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며 알았다. 농담은 농담처럼, 진담은 진담처럼 맺고 끊음이 확실해야 현명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걸.


살다 보면 말의 사실 여부를 판단할 수 없는 사람을 종종 만난다. 뼈가 있는 말인 것 같은데 괜히 내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봐 찝찝했던 경험이 나에게도 있다. 무심코 흘러가던 말에 괜스레 기분이 상하고, '어떻게 저런 말을 심심찮게 할 수 있지' 물음표를 곤두세우면서도 나를 탓했던 시간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쓰지 말아야 할 단어'가 늘어난다는 건 번거롭고, 피로한 일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가치를 품고 있는 희소식이기도 하다. 암묵적 동의하에 쓰여온 단어들에 어느 날, '어라? 그러고 보니 이 단어, 조금 이상한데?' 하고 의문을 품는다는 건 비로소 우리가 그 단어의 주인이 되었다는 뜻이니. 앞으로 써나갈 언어를 차근차근 톺아보는 움직임은 값질 수밖에 없다. (p. 32~33) 



언어는 단순히 대화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 안에는 문화적 맥락과 역사적 배경이 담겨 있다. '예쁘다'는 표현 뒤에는 암묵적인 외모 평가가, '결정장애'라는 합성어에는 장애를 비하하는 태도가, '죽는다'는 표현 뒤에는 강압적인 메시지가 알게 모르게 서려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언어를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쓰는 우리는 전혀 나쁜 의도 없이 사용하더라도 듣는 이에겐 충분히 의미가 왜곡되어 닿을 수밖에 없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해지는 건,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발현된 것이니라. 





『착한 대화 콤플렉스』는 우리가 대화를 통해 교감하고 공감하는 지점들의 지평을 넓히고자 다양한 사례를 들어 단절이 발생하는 이유를 조심스레 톺아본다. 저자는 말한다. 말은 잘못이 없다고. 쓰임이 잘못됐을 뿐이라고.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역지사지를 경험하고, 사회가 짜놓은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른다. 


말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사회에 필요한 자세는 말끝을 붙잡고 싸우는 게 아니라 숨은 맥락을 이해하고 미처 다 전달하지 못한 마음을 알아차리는 기민함을 기르는 게 필요한 것이지 않을까. 


마땅한 언어가 사라져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칭찬이라 여겼던 단어에 담긴 시대착오적 방식을 서로 불편하지 않은 언어로 대체하고, 부정적인 언어를 보다 순화시켜 사용하자는 것이다. 진심은 언제부턴가 사라진 게 아니라 형식에 구애받아 출발도 하지 않았을 뿐이다. 



과연 우리의 삶은 '공감'이란 단어에 얼마나 닿아있는 걸까. '진짜 공감'을 강요하는 주범에 우리 스스로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걸까. 자문해 본다. (p. 107)



저급한 언어로 자신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사람을 우린 많이 봐왔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수많은 이들을 떠올리며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옛말을 천천히 읊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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