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을 좀 다녀올까? 지금쯤 평일 비행기값도 저렴할텐데... 일본을 여행지로 선호하는 건 휘황찬란함이 아닌 낮은 건물들과 골목골목 사이를 걷는 차분하고 침착한 바이브 때문이다. 정말 확 떠나버려? 시월 안엔 어떻게서든 이 쉼의 마무리를 짓자.
지금 껏 봐 온 나는, 처음 시작하기가 어렵지 한 번 시작하면, 마음 먹으면 어떻게해서든 하고야 마는, 해내는 성미가 있다. 너무 많은 생각이 날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고약한 구석이 있다. 생각만 하다 시간만 흘려보냈던 순간들도 부지기수다.
"촤! 자꾸 이러기? 이럴거야?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아. 경험적으로 꽤 많이, 자주 그랬어. 이젠 더는 안 될 일이야. 일단 무엇이든 당장 시작하고서 얘기해 그러자구! 당장 뭐라도 일단 해보라구" 이번엔 진짜일까?
생각에 갇히면 꽉 막힌 기분이 든다. 게다가 행동까지 굼뜨면 총체적 난국이다. 요 며칠 완전히 갇힌 기분이었는데, 사방에서 날 꽉 옥죄고 있는, 타는 듯한 기분이었다. 확실한 건 이 답답함이 꽉 막힘이 어디에서 온 건지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 알아차린다는 것.
꽉 막힌 기분일 때, 어떤 해답도 도무지 찾아지지 않을 때, 이 상황이 계속될 것만 같은 망상이 일 때, 벌떡 일어난다. 자리를 우선 박차고 일어난다. 살랑이는 가을 바람도, 푸른 하늘도 그 순간 내게 그 어떤 위로도 되어주지 못한다.
간밤에 잠을 설쳤다. 분명 집착해서겠지. 불안해서겠지. 두려워서겠지. 알면서도 알아차리면서도 진짜 행동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못미더움, 나약함 때문이겠지. 지금을 살지 못하고 있어서가 확실하다.
잠을 설친 차제에, 침대 밖을 나와 소파에 앉았다. 불도 켜지 않고 덩그러니 앉았다. 곰곰히 들여다봤다.
"촤야, 잠이 안 오니? 언제부터인가 이맘 때면 늘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잖아... 왜 그런 것 같아? 왜 그럴까? 집착때문이란 걸 너도 알고 있지? 계속 이러고만 있을 거야?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생각만 하다 너무 많은 걸 놓치고 그러다 많이 안타까워하고 아쉬워했다는 걸. 딱 작년 이맘때, 정말 찰나지. 하고 싶은 무언갈 자꾸 내일.하고 미루기만 했더니 지금 어떻게 됐어?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어! 한 살만 더 먹게 됐어. 이게 정말 네가 원하는 삶 아니잖아? 이젠 정말 변화할 때도 되지 않았어? 생각만 하고 있는 게 너무 똑땅해..."
간 밤 나와의 대화는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눈떠보니 소파 위 그리고 밝은 아침이었다. 정신이 또릿또릿했다. 간 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간 밤의 대화가 신통방통했던 걸까. 새벽녘 나와의 대화는 너무도 잘한 일이었다. 번쩍든 정신이 행여 또 다시 어디론가 가버릴까 바짝 붙잡고 거울 앞으로 갔다. 부엌과 가까운 곳에 사각 거울을 걸어놨는데, 커피 물 먼저 올려놓고 거울 속 내 눈을 보았다. "올, 아주 잘 잔 모양이야. 피부가 맑네. 깨끗한 걸? 눈동자도 또릿한 게 굿굿."
내 현재 기운, 운을 내 눈동자의 맑음, 빛으로 확인하는 편이다. 어김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눈동자의 맑음과 빛만큼은 잃지 않으려 한다. 눈동자의 맑음은 심상이다.
살아보니 생각이 많은 건 단점도 장점도 아니었다. 생각이 많은 것 자체엔 문제가 없다. 그 생각을 내게 유리한 방식으로, 유익한 방식으로 사용하지 못한 나 자신의 태도와 대응방식이 문제였다.
서른 후반이 된 지금, 마흔을 코 앞에 둔 지금, 생각이 많기만 한 건 유죄다. 직무유기다. 내 삶에 닥친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지 않고 내버려둘텐가? 방치할텐가? 그 누가 대신 해결해 줄 수 없다. 오직 나 자신과의 치열한 한 독대, 처절한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발견하는 빛이다.
지나보니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지 생각이 깊은 사람이 아니었다. 생각이 많은 것과 생각이 깊은 건 분명 다른 것이다. 이젠 정말이지 생각이 깊은 사람으로 거듭나야할 때가 아닐까? 그러자. 이번엔 정말이지 이 생각의 늪에서, 머뭇거림에서 주저함이란 알에서 깨어나자. 알을 깨자.
더는 내 인생에 생각만 하는 죄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