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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evibes Oct 03. 2024

솥밥을 하다가

강황솥밥을 했다. 솥밥할 땐 무심한듯하면서도 무심할 수 없는 게, 불조절도 뜸들이기도 어느 것 하나 소홀하지 않으면 금세 타버리기 때문이다. 무심한듯 세심할 수밖에 없는 솥밥짓기가 그래서 좋다. 


솥밥짓기가 전혀 귀찮음이 아닌 즐거움이고 기쁨인 이유, 알아차림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 무엇이든 뜸들이는 시간이 필요해... 솥뚜껑을 닫고 가만히 기다리고 나면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솥전체를 감싸니, 그렇게 아주 알맞게 익어가는 그 과정... 내게도 뜸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해준다.  


두꺼운 패딩을 입을 날이 머지 않았구나.싶은 이 계절의 쌀쌀맞음이 반가운 건 왜일까? 나이 들수록 차가운 계절이 좋아지는 것도 다 이유가 있겠지? 겨울집안의 따스한 공기. 따뜻한 카페 라떼 한 잔, 지브리 피아노곡이나 바흐의 잔잔한 첼로 연주곡, 따뜻한 매트가 깔아진 침대 위, 이불 밖을 나오기 싫어하면서도 마냥 이런저런 상황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들 투성이... 


계절은 인간에게 늘 말하고 있다. 어느 계절이건, "이 계절만 지나면 또 다른 온도의 세상이 분명 오잖아... 그러니까 이 무더위도, 이 추위도 영원하지 않아. 삶도 마찬가지지...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면 또 다시 나아가면 되는 거야...!" 


먹고 남은 가지를 꺼냈다. 살짝 볶아낸 뒤 가지 솥밥을 했다. 먹다 남은 삼겹살도 불을 낮추기 전 솥밥에 올렸다. 그렇게 뜸들이고 뚜껑을 여니 짜자잔, 포슬포슬하니 아주 알맞게 됐다. 뚜껑을 딱 열기 직전, 작고 사소한 시시한 설렘이 있다. 어떤 모양샐까? 잘 익었으려나? 어릴적부터 된 밥만 먹어와서 또 그게 취향이라서 내가 짓는 밥은 전부 되다. 고슬고슬한 된 밥이 취향이다. 


솥밥을 그릇에 담고 솥밥 올려놓으면서 만들어 놓은 양념장을 넣어 슥슥 비빈다. 이토록 간단하고 간편할 수가 없다. 내가 차리는 밥상, 그리고 요리는 실은 많은 반찬이 필요없다. 선호기도 하고 한 두 개 음식을 재료 풍부하게 맛있게 만들어내면 다른 반찬은 절로 필요없게 된다. 간단하면서도 간소한 것이 취향이다. 


마트에서 파는 1,400원하는 라떼가 있는데, 갑자기 그 커피가 당기는 게 아닌가. 추적추적 비가 내리지만 우산을 들고 나가지 않았다. 비가 맞고 싶어서다. 이렇게 해서라도 빗방울과의 접촉을 통해서라도 기어코 우주와 하늘과 닿겠다는, 닿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에서다. 비 맞는 걸 원체 좋아하기도 하고 젖으면 또 어떤가. 씻으면 되지. 옷을 갈아입으면 되지. 그런 순수가 좋다. 


하의는 바이커 팬츠를 입고 나갔더니 확실히 제법 춥다. 쌀쌀하다를 넘어 춥다. 종아리 시렵다. 발 시렵다 정도가 됐다. 계절의 순환은, 계절의 변화도 참, 예고 없다. 


러그를 깔았다. 러그를 깔았다는 건 분명 가을이, 겨울이 왔다는 확실한 증거이자 계절에 따른 내 집안 인테리어의 소소한 변화다. 아이보리 러그색이 반갑다. 포근한 게 있다. 침대에 깔아 사용하는 매트 말고도 수건 사이즈 만한 보온 매트가 하나 있는데, 몇 년째 아주 잘 사용하고 있는 요물이다. 소파에 기대 러그 위에 앉을 때나, 발 시려울 때나, 배에 대고 있을 때나 매우 유용하다. 어제부턴 보온 매트도 꺼냈다. 


새로온 디퓨저 향이 침실과 거실에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것이 꼭 유럽의 어느 에어비앤비나 호텔 숙소에 와 있는 기분이다. 몇 만원의 행복인데, 이런 무드, 바이브는 놓치고 싶지 않은 것 중 하나다. 비오는 날 잔잔히 울려 퍼지는 지브리 피아노 연주곡도 내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나는 왜 이토록 내 일상을 관찰하고 사색하고 사유하고 기록할까? 글쓰기는 순전히 내 일상의 기록이기도 한데,  글쓰기는 내가 되었고, 내 삶 그 자체가 되었다. 글쓰기는 내게 밥 먹는 것과 같다. 음식이 그러하듯, 신체조직을 형성하는데 필요한 영양소 다름 아니다. 삶을 이어나갈 수 있게 해주니까. 무너지지 않게 하니까. 


시월 첫 주도 이토록 쏜살같다. 계절이란 게, 시간이란 게, 이토록 박력있었던가. 아쉽지만서도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월 첫 주 인것을...  나에게만 이토록 박력있는게 아니란 걸. 아쉬우면 아쉬운대로 섭섭하면 섭섭한대로.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나는 이 숭고한 계절의 변화를 앞으로 몇 해를 더 보게 될까? 매일 죽음을 인식하며 사는 건 내게 전적으로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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