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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evibes Sep 02. 2024

주말이면 베르사유 궁전에 갔다

사진첩을 보다 주말이면 줄곧 향하던 베르사유 가는 길, 역사 안과 밖 풍경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벌써 몇 년 전인가. 엊그제 같은데, 분명 내가 경험한 그곳이고 그 길인데  이토록 생경하다니, 꿈만 같고 없던 일 같고 실체 없게 느껴진다. 기억일 뿐이라는 것. 이것만이 분명한 진실이 됐다. 


즉흥적인 성향인데다, 베르사유 궁전가는 길도 기어코 버스를 타고 가곤 했다. 같은 길을 가는 것보다 새로운 가는 선호하는 터라, 내게 걷는 길은 모험이었고 도전이었다. 파리살 때, 방황의 늪에 허우적댈 때, 방황과 우울의 너비가 땅에 철썩 붙었을 때, 주말마다 베르사유 궁전을 찾는 너무도 잘한 일이었다. 인지는 모르겠는, 우선 파리 시내를 벗어나야겠다는 것, 그러나 오고 가는 길을 감안해 그리 멀지 않았음 한다는 것(심리적인 측면)이 주된 요소였을 것이다. 


새 것보다는 옛 것. 오래된 것, 낡은 것에 흥미가  있는 것도 한 몫했다. 어릴 적부터 고대 역사, 중세 역사를 좋아했고 대학시절에도 사학과 전공수업을 타학과 학생인 내가 맨 앞줄에서 열심히도 들었다. 특히나 서양사에 흥미가 있었으니 프랑스를 선택한 건, 베르사유 궁전을 자주 드나든 건 어쩌면 강한 이끌림, 인연, 필연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뮤제 카드(Carte)가 있어서 주말이어도 줄서지 않고 바로 들어 갈 수 있었고 횟수제한 없이 무료였다. 유효기간이 2년인 특급카드였는데, 내겐 마법의 카드였다. 덕분에  파리 시내 미술관을 무료로 들어갈 수 있었으니, 그 시절 내게 이보다 더 한 선물은 없었다. 행운이었다고 할 수밖에. 


그 시절 파리는, 내게 방황과 우울, 환희와 행운, 행복했던 순간순간이라는 양가감정을 느끼게 했다. 그러니 모든 것이 영원할 리가 있나. 우울하고 방황했던 것도 분명 그 순간순간 이었을 거고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기억도 분명 순간순간이었을 것이다. 


꽤 오래되었기도 하고 그 시절 베르사유 궁전 가던 루트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RER을 타고 가다 내려서 버스를 타고 40분-1시간여 일드 프랑스 시내 버스를 타고 갔던 기억은 선명한데, 분명 다시 찾아가라면 검색해서든 쉽게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절이  후루룩 빗물 쏟아지듯 내게 쏟아지는 건 무엇. 그리움이겠다. 


베르사유를 찾을 때마다 무엇보다 그 긴 줄을 오랜 시간 서지 않아도 된 다는 게 내겐 엄청난 것이었다. 그 드 넓은, 끝이 없이 펼쳐지는 베르사유 궁 공원을 나는 꽤 오랜 시간에 걸쳐 걷고 또 걸었다. 걷다가는 인공호수 앞을 바라보며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있기도 했다. 쪼그리고 앉으면 앞코가 뭉뚱한 내 운동화가 보였다. 햇볕에 반사돼 반짝반짝이는 잔잔한 물결이 나를 위로했다.   


어느 날은 마히 앙뚜와네뜨가 머물렀을 쁘띠 트히아농(Petit Trianon)작은 침실과 부엌을 한참을 들여다보고 오곤 했다. 역사는 내게 이런 것이다. 잡힐 듯 하면서 잡히지 않는, 그러나 분명 기억으로 존재하는 것, 인생도 마찬가지겠지.싶다. 아침 일찍 출발해 오후 5시쯤 되어서야 기차에 올랐다. 돌아올 땐, 꼭 곧장 기차를 탔는데, 역 앞 맞은 편에 있는 작은 스타벅스에 앉아 기차를 기다리던 그 시절이 나는 이토록 그리운건지.


그 시절 내 나이. 가만있어 보자.이러곤 셈해본다. 내 나이 서른 둘. 꺄악. 이토록 젊었는데, 나는 왜 그토록 방황하고 우울에 몸서리쳤는지. 그땐 정말이지 몰랐다. 지금 알게 된 것들을 그 시절 알았더라면, 알게 되었더라면 좀 더 나았을까? 행복했을까?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오는 대로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면 몰아치는 대로 나는 그 길을 걷고 또 걸었으니, 한참 지난 그 시절이 나는 왜 이토록 그립고 그리운지. 고마운지. 글쓰며 그 시절을 복기하면서 다시금 나 자신을 회복한다. "난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아직도 그 기억이 선명한데, 발걸음 닿는대로 가던 중 찾게 된 어느 길은 가운데 잘 정리된 꽃길이 있었다. 꽃밭 같았다. 그 길 오른쪽엔 역사 속 어느 마담의 메종이 있었고 그 길 반대편엔 현재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의 풍경이 대비를 이루었다. 


주말마다 찾은 베르사유 궁전이 실은 내 여정의 목적지가 아니었다. 그 길로 향하는 그 길이ㅡ 그 새로움이, 그 낯섬이 내게 위안을 주었기 때문이다. 위로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 여정 마지막엔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섭섭하지^^ 줄서지 않아도 되는 카드 덕분에 한 번 쓱 돌고 왔던 적이 더 많다. 그 시절 날 위로했던 건, 파리 시내가 아니었다. 오베르 쉬오아즈, 베르사유 궁전, 샹티이 고성... 일드 프랑스, 파리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프랑스 시골이, 동네가 내겐 진짜 프랑스다웠다. 


파리 시내에만 줄곧 머물렀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참 아쉬운데, 다시 프랑스를 찾게 되면 곧장 남프랑스로 향해야지.하는 생각이 있다.


아름다움이 눈 앞에 있는데 그 아름다움을 볼 줄 몰랐던 건 내 어리석음이었다. 지나보니, 모든 시절은 내겐 꿈같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이따금씩 야금야금 원하면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는, 미소 지을 수 있는 기억 보따리가 있다는 건, 내겐 정말이지 행운이다. 선물이다. 


주말 내, 우울함에 몸서리쳤는데, 오늘 오전 즉흥적으로 꺼내어 본 그 시절 보따리가 이토록 내게 큰 위로가 되어주다니. 고마움이 밀려온다. 많은 말이 필요 있을까. 그 시절 추억에 흠뻑 젖었으니, 말랑말랑해졌으니, 알아차렸으니, 다시금 일어서면 된다, 기운내면 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은 마음 껏 지난 시절들을 기억하고 추억해야겠다. 어떤 날은 이런 소소한 기억 앨범들이 날 살게 하니까. 내게 힘을 주니까. 날 위로해주니까. 날 사랑하게 하니까. 날 존중하게 하니까. 


어떤 날은 족쇄를 찬듯 아주 힘겹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살기 위해 그곳을 찾기도 했고 어떤 날은 처절한 고독에 사무친 채 터벅터벅 걸었고, 거센 비바람과 빗방울을 얼굴, 몸 정면으로 맞으며 이것이 콧물인지 눈물인지도 모르게 의식할 겨를 없이 그렇게 앞으로 나아간 날도 있었다. 


그 시절 고독이 아직도 내게 이토록 선명하고 분명하고 생생한 이유는, 그 고독이 여전히 내 곁에 살아숨쉬고 있어서다. 날 성장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방황, 고독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진부하지만 그 진부함이 더욱 진실에 가깝다는 생각이 있다. 


나는 여전히 방황한다. 우울해 한다. 힘겨워 한다. 몸서리친다.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기로 했다. 받아들이니 많은 면에서 자유로워진 부분이 있다. 사는 게 좀 더 수월해졌다. 

  

문득 베르사유 궁전이 궁금해졌다. 모든 것이 그대로일까? 변한 건 나뿐일까? 다시 찾게 되면 나는 그곳에 무슨 이야기를 건넬까? 그곳은 내게 무얼 말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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