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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evibes Oct 05. 2024

매일 루브르 박물관에 간 이유

파리 살 던 때, 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잠깐이라도, 삼십분이라도, 한 시간이라도 루브르 박물관에 들르지 않은 적이 없다. 문화부에서 일하는 파리지엔느 현지 친구 덕분에 승인 받은 뮤제카드(Carte)로 3년 동안 횟수 제한없이 무료로, 그것도 줄서지 않고 파리 시내 모든 미술관과 박물관, 베르사유 궁을 들어갈 수 있었다. 미술관과 박물관을 좋아하는 나로선 귀한 선물이었다. 승인받은 카드 뒤에는 내 이름, 증명사진, 유효기간이 적혀있었다.


지난해 만료되었고 어찌나 아쉬웠던지. 버리지 못하고 기념처럼 그렇게 간직하고 있다. 3구에 살았어서 제일 가깝게는 피카소 미술관과 퐁피두가 걸어서 10분-15분 거리에 있었고 루브르도 15-20분, 오르세도 걸어서 30분이면 닿았다. 들라크루아, 반 고흐, 폴 시냑... 책에서만 보던 예술가들의 그림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건 경험이 아닌 체험 그 자체였다.


퐁피두 도서관도 종종 가곤 했는데, 여느 도서관처럼 나와 같은 사람들, 학생들의 잔상 속에서, 파리도 서울도 어느 도시건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는 걸 느끼기에 충분했다. 파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차가웠고 도도했고 그러면서도 어느 날은 이토록 낭만적일 수 없는 기묘한 도시였다.  


매일 루브르에 간다는 건 내 입장에선 엄청난 특권이었다. 감사하게도 파리 시내 미술관, 박물관 입장료를 내 본 적이 없어서 사실 입장료를 검색한 적이 없었다. 문득 이 시점에 "그러고보니 입장료가 얼마인지도 모르네, 얼마였을까? 얼마였는데 내가 이토록 무료로 들어갔을까?" 싶어 검색해봤다. 루브르만 해도 22유로... 삼만원 돈이니 실은 큰 돈 아닌가. 생각하면 할수록 결코 넉넉하지 않았던 파리 생활에 이 카드는 정말이지 요물이었다. 참 감사하다. "그러고보면 난 참 행복한 사람이야." 새삼 느끼게 된다.


팍팍하고 때론 침울했던 서른을 보내던 내게 삶은, 이 우주는 늘 이런 방식으로 내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게, 포기하지 않도록 야금야금, 아주 살짝, 일상의 빛을 보게 했다. 이 카드가 아니었다면, 친구 제시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떤 식으로든 설명되지 않는, 필연일 수밖에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당시 파리 생활에 루브르, 오르세 미술관은 한줄기 빛이었고 낙이었고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매일 가도, 매일 같은 그림을 보아도 지루하지 않았다. 늘 새로웠고 홀로 그림 앞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나를 알아차리는 일이 일상이었고 삶 그 자체였다.


수많은 명작들을 통해 무엇을 기대했을까? 무엇이 그토록 위로 받고 싶었을까? 루브르도 폐점 시간이 가까이 되어서야 나오곤 했는데, 특히나 평일 폐점 시간 1시간 전쯤이면 아주 고요하다. 한적하다. 찬란한 조명들은 여전히 빛나고 중앙으로 통하는 공간 벤치에 앉아 있으면 가끔은, 내가 이곳에 있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아주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순간들에 감사해했다.


카드가 없었더라면 매일 루브르에, 오르세에, 퐁피두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 주말이면 찾던 베르사유 궁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 카드를 보여주면 줄서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건 엄청난 메리트였다. 입장료가 부담스러 매일 가지 못했겠고 한 두번으로 만족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토록 감사하고 소중한 카드였을 수밖에.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박물관 곳곳을, 미술관 곳곳을 어느 때는 빠른 걸음으로, 어느 때는 아주 느린 걸음으로 걷고 또 걸었다. 마치 곳곳의 명작과 유물들이 내게 어떤 답을 내려줄 것만 같은, 착각이었을까? 그렇게 무언가를 보다보면 어느 순간 물리가 트이지 않을까? 질문할 수 있지 않을까? 해답이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답은 그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안에 있었다.는 걸 그렇게 한참을 꽤 오랜 시간 파리 시내 곳곳 뮤제를 돌아다니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달까. 어쩌면 서울을 떠나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순간 나는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어디에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어디에 살든, 어떤 곳에 머물든, 내 마음이 머물지 못하면 사는 곳이 아니다. 사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이 머무는 곳이 사는 곳이다. 답은 내 안에 있다는 걸.나는 이렇게해서라도, 돌고 돌아 꽤 오랜시간이 걸려서야, 생각보다 꽤 많은 경험들을 하고 나서야 깨달아야만 했던 운명이 아니었을까. 출렁이는 서른,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되는 삶의 여정을 통해 이 우주는 내게 삶을 알게 했다. 배우게 했고 깨닫게 했다.


"이 모든 건 다 널 위한거야."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그해 초 겨울, 퐁피두에선 프란시스 베이컨의 전시가 있었다. 집에서 지척이기도 했고 모노프히에서 장보다가도 즉흥적으로 자주 들린 곳이기도 하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베이컨의 전시를 보러 갔다. 기괴스러워보이는 베이컨의 작품들을 한참을 들여다봤다. 멍하니 도대체 나는 지금 왜 여기에 있는가? 도대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가?... 하면서도 한 발자국 멀리 떨어져 앉아 한참을 그 채로 쳐다보고 나서야 그곳을 빠져나왔다.


사소한  같지만, 소소한  같지만, 꾸준한 들여다봄이 어느 순간 미적인 정취를 가져왔달까? 수많은 명작들을 통해 보이는  다가 아니라는 , 보이는  너머 이면의 것을 들여다 볼  아는 지혜, 통찰력... 그것은 경험적인 것보단 직관적인 것이고 체험이었다.


지난 시절이 정말이지 꿈같다. 어린 시절, 대학시절, 직장인 시절, 파리 살던 시절, 서른이 넘어 지금까지의 삶 모두 정말이지 꿈같고 정말 실재했던 걸까? 의뭉스러울 만큼 그렇다.  


삶이 이런 거였던가? 찰나.싶은 것이 어느 순간 훅 밀려올 때가 있다. 이토록 짧구나.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했나. 지난 시절, 삶, 일상, 순간들을 돌아보게 된다. 모든 것이 아득해져 간다.


기억의 소환 끝자락엔 늘 알아차리게 된다.

"이토록 추억할 게 많은 걸 보면, 떠올리기만 해도 이토록 그립고 즐겁고 행복해하는 걸 보면 난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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