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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evibes Oct 07. 2024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

먹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평소와는 먹는 게 달라진다. 호르몬 변화는 이토록 잔잔하게 그러나 며칠 사이 내 일상과 몸에 스며들어 며칠을 뒤흔들고 나서야 사라진다. 평소 먹지 않는 당류, 과자, 아이스크림, 군것질이 당기고 과식하고 기분이 요상해진다. 이유 차치하고서라도 가뜩이나 시시로 찾아오는 우울에 호르몬으로 인한 감정기복, 우울이 겹쳐 대환장의 상태가 된다. 환장한다 환장해.가 괜히 나오는게 아니다. 


며칠 새 사라지건만, 내 몸과 마음 관리엔 치명타다. 아무리 제법 알아차리고 익숙해졌다지만, 스트레스가 심할 땐, 그동안 지켜왔던 모든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곤 한다. 시월 첫 주. 호기롭게 시작한 시월. 내 바람과는 다르게 잔인한 달이 됐다. 


요즘 잠도 뒤척인다. 어느 날은 꼴딱 샌다. 수면이 가장 중요한데, 수면까지 망가져버리면 비상사태.란 걸 알아차린다.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는 설명이 맞겠다. 방황하면 어떤가? 그럴 수 있지. 그럴 수도 있지. 방황은 잘못이 없다. 잘못된 게 없다. 그렇다고 단 한 번도 누구에게 기대거나 내 삶을 소홀히 한 적은 없으니까. 그 누구도 날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있다. 심지어 나 자신조차 날 평가하지 말자. 나는 평가대상이 아니란 걸 명확하게 알아차리며 산다. 


요 며칠,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일었다. 난 뭐하는 사람이지?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았던 적이 있나? 죽을만큼 그 무언가를 향해 노력해 본 적 있던가? 달려본 적 있던가? 나는 진실된 사람인가?... 잠못드는 밤에 쏟아지는 질문들로 동이 틀 때까지 눈만 껌뻑이고 있어야 했다. 지금 이 방 안에 있는 나는 누구인가? 지금 여긴 어디인가? 나는 왜 이곳에 있는가? 왔는가?... 


그럴수록 죽음에 대한 인식은 더욱 맹렬해진다. 나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 나는 언젠가 죽는다.를 늘 생각하며 산다. 어떤 염세주의나 허무주의, 회의와는 다르다. 내게 죽음을 인식하며 사는 삶은 감사함이고 아름다움이다. 죽기에 그래서 더욱 이 계절을, 이 하루를, 이 순간을 놓치지 말자.는 자기 주문 혹은 만트라다. 


으랏차차. 이대로 무너질 순 없지. 이 기분으로 내 소중한 순간들을, 내 소중한 하루를 이렇게 보내 수 없어. 어떻게서든 일단 일어나고 본다. "끄억... 오늘 제 때 잠들긴 글렀군...!" 흥칫뿡. 누구한테 그러는지 모르겠는, 그렇게 흥칫뿡을 하고선 펜을 찾는다. 노트에다 적어내려간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하면 기분좋아지는 것들

*내가 하면 설레는 것들

*내가 하기 싫어하는 것들 

*내가 하면 싫은 것들 


술술 써내려 가다보면 조금씩 조금씩 무언가가 선명해진다. 써보면 안다. 무엇을 더하는 것보다 빼는 일이라는 걸, 덧셈보단 뺄셈이 유익해진, 유리해진 나이가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하기 싫은 것들 혹은 견디기 어려운 것들을 적는 일이란, 실은 고르고 고르는 일이다. 하나씩 하나씩 제거하는 일이다. 그러다보면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 진짜가. 본질.이 남는다. 결국 내가 진짜 원하는 는것이 무엇인가?라는 건, 결국 본질.과도 같은 것이다. 


갑작스런 호르몬 변화와 감정기복의 심화, 감정과 우울과 무기력감이 지금 이 순간을 요절복통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려니 할 수 있는 건, 결코 나만 힘든게 아니라는 것.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각자 저마다의, 자기 만의 고통과 힘겨움,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나이가 돼서야, 서른 중반이 넘어서야 진심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알게 되었다. 


너와 나는 다르지 않아.라는 마음. 나와 너는 하나다.라는 마음. 나는 너를 이해하고 있다.는 마음. 따뜻한 인사 한마디, 말 한마디, 미소, 친절, 다정함이 우릴 살게 하는게 아닐까? 


나는 절실한가? 

절실한 맛이 있어야 한다. 

경험적으로 절실하면 불안하지 않았다. 두렵지 않았다. 우울하지 않았다. 살아있음을 느꼈다. 


분명해진다. 

절실한 무언가.를 찾게되면 나는 분명 거침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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