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lievibes Oct 08. 2024

작은 머그컵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  

믹스 커피를 마실 때 나만의 소소한 것이라 할까. 에스프레소 잔처럼 작은 도자기컵에 먹어야 한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그곳에 먹어야 맛이 더 난달까. 무튼 취향이다. 늘 대중잡아 넣는데, 습관적인 감각으로 나름 물양이 일정할테다.


수육이나 족발처럼 양이 좀 되는 음식을 먹으러 갈 때면 종종 스테인리스 도시락통을 챙기곤 하는데, 먹고 남은 음식을 용기에 담아 촥촥 뚜껑 닫을 때, 꺄악. 뭐랄까. 야무진 기분이 든다. 싸온 음식은 다음날 훌륭한 한 끼로 변신한다. 대개 양념해서 볶는다. 그런 사소함, 시시함, 살뜰함, 알뜰함에 기분좋아지는, 설레는 성미가 있다.


밖에서 혼자일 때, 나만의 장소나 도서관에 머물때 집에서 커피 믹스 1-2봉 그리고 작은 머그컵 하나를 챙겨 나온다. 내겐 이토록 자연스러운 일인데, 한 번은 가방에서 도자기컵을 꺼내니 그걸 본 누군가가 독특하다는 마냥, 그 가방에서 이게 나올줄은 몰랐다며.놀라워했던 적도 있다.


남은 음식은 포장해 오는 사람. 작은 머그컵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 어느 방식이건 내가 사는 방식이 타인에게 해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해되지 않는다면 괜찮다.는 생각이 있다.


5년을 믹스 커피 전용으로 잘 사용했던 미니 도자기컵은 어느 날 설거지를 하다 손잡이가 또각.하고 떨어졌다. 언니가 직접 만들어 준 것이었는데, 앙증맞고 흙의 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그러면서도 퉁퉁한 미니 도자기컵이었는데ㅡ 아쉽지만 모든 것은 인연이고 너와 나의 인연에 감사해하며 그렇게 보내주었다.


곧 3,500원짜리 락앤락 미니 유리컵이 내게로 왔다. 지난 달 샀는데 만족스럽게 잘 사용하고 있다. 오늘 아침 집을 나서기 전 믹스 커피 2봉과 미니컵을 지퍼백에 넣었다. 천조각으로 지퍼백을 오므리고 감싸 마치 안에 도시락통이 들어있는 것처럼 만들었다. 그럴싸하다. 아주 시시한 행복... 이런 류. 하루에도 수십 번은 맛본다.


2봉을 챙긴 건, 도서관에서 1봉. 조카 하교길 시간에 맞춰 잠깐 들를지도 모르겠는 언니네 방문을 대비한 것이었다. 언니네 놀러 갈 때도 종종 믹스 커피 몇 봉을 챙겨 간다.


사주에 역마살이 3개나 된다는 걸 알고서야 지금까지의 내 삶이, 여정이 조금 이해가 되었달까? 어릴적부터 절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졌고 선호했다. 부처님 오신날엔 조계사 정도는 산책겸 꼭 들르는 편이다. 어느 부처님 오신 날엔 조계사, 청계사, 봉은사, 대성사... 4곳을 간 적도 있다. 반야심경과 불교철학, 동양철학, 아드바이타 베단타에 관심있다.


대학에  입학했을 , 할머니댁에 살았는데 오후 4시쯤이면 할머니의 불경 낭독이 끝날 때까지 숨죽여 있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의 낙이었고 만트라였으리라.


최근 내 사주를 파악하는데 재미가 들렸다. 순전히 나를 이해하고 싶어서였다. 순수하게 "나는 도대체 왜 이럴까?",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됐다. 작년 이맘 때 잠실 근처를 지나다 우연히 사주를 봤는데, 맞는 부분이 있었고 무엇보다 "내 사주 내가 보고 싶은데?"하는 마음이 들었다. 도서관에서 책도 보고 영상도 보고 해서 내 사주를 파악해봤다.


내 사주보기를 누군가에게 맡기지 않고 내가 직접 파악해보고자 했던 건, 지난 나를 용서하고 위로하고 놓아버리기 위함이었다. 내가 파악하면 인정 될테니까. 효과 있었다. 이제 알았으니 너무 힘들어말고 상처받지 말고 아파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진짜 네 삶을 살라고. 자기 자신이 되어가자고.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을 살자.는 발악과도 같은 것이다.


한 때 해외도 한 분기에, 한 해에 몰아서 나갔던 적도 있고 거처를 많이 옮기던 해도 있었다. 모든 것은 다 내 선택이었겠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순간순간의 선택도 결국은 인연이구나. 필연이 아니었을까.싶다. 선택은 무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결국 내 삶이 되고 운명이 된다.


자꾸 이사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싶다. 새로운 땅을 밟고 싶은 마음이 훅 이는 건 왜 일까? 이 또한 다 이유가 있겠지? 내년엔 이곳을 떠나게 될 것 같다. 내 마음이 그러하니 그렇게 될 거다.


작은 머그컵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에서 시작된 내 글쓰기는. 어쩜 이토록 나처럼 무작위한지. 제 멋대로인지. 생뚱맞게 내가 직접 보는 사주 이야기로 흘러가다 결국 이쯤 돼서야 알아차리는 나란 사람.


어느 방식이건 그래서 자기 자신의 글쓰기가 자기 다울 수 있는 게 아닌가? 글쓰기에서만큼은 철저히 나다울 수 있는 게 아닌가?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지 않은가? 진실될 수 있는게 아닌가?


점철되는 사유와 사색은 날이 갈수록. 나날이 깊어진다.

그 깊어짐이 반갑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