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yself Oct 04. 2024

제주행 비행기표를 놓아버린 이유

도저히 기운나지 않을 때, 몸을 움직이려 애써야 할 때, 몸과 마음이 동시에 날 무너뜨릴 때, 불안이 밀려올 때, 그런 날이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았어도, 어떤 문제가 없는 날도 찾아온다. 평온은 언제든 깨질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그렇게 예고없이 찾아온다. 


원래였음 지금쯤 제주에 있어야 한다. 오후 비행기를 예매했고 출발하면 되는 거였다.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비행기를 놓쳤다면 그나마 나을터. 타지 않았다. 막상 제주에 가는 것이 힘들고 귀찮게 느껴졌다. 나는 그렇게 또 다시 찾아온 우울감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건 불안함이었고 두려움이었고 집착이었다. 


분명 떠나면, 제주에 도착하면 언제 그랬냐는듯 신나하고 즐거워할 걸 알면서도 오후에 불어닥친 감정에 낙오됐다. 이런 방식으로 비행기를 보내버린 건 인생에 처음이다. 예매한 티켓값이, 그리고 내 시간과 여정이 아까워서라도 비행기를 이런 식으로 놓아버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엄마에게도 연락하지 않았고 숙소도 어떤 일정도 계획된 것이 아니어서... 비행기표만 놓으면 되는 거라서 이토록 쉽게 놓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저녁이 돼서야 정신이 말똥말똥 차려진다. 참 마음 너, 간사하다. 이토록 시시하다.싶다. 기분이 좀 나아지니, 감정이 좀 평온해지니 이제서야 제주 생각이 난다. 


어느 쪽이었든 분명 내 선택이었다. 선택이란 즉흥적일 수도 계획적일 수도. 선택의 갈림길에서 택한 그 어느 선택도 분명 그 당시 그 시간대 내 기운의 투명한 반영이었겠다. 오후의 일은 분명 내 기운의 반영이었고 제주행 비행기를 타지 않은 건 이제서야 영 못미덥지만 그 순간 최선의 선택이지 않았을까. 이렇게 해서라도 애써 합리화해본다. 


하루에 커피를 한 잔이라도 마셔야 하는 커피 러버에겐 달달한 카페 라떼 한 잔이 큰 위안이 된다. 특히나 이런 기분일 때, 우울이 날 감쌀 때, 밤에 찾는 카페 그리고 재즈 선율은 날 다시 살게 한다. 기운나게 한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자주 찾는 카페가 있다. 2층에 있고 통창이 있는 곳인데 저녁 6시가 넘으면 무척이나 한가하다. 손님이 나 혼자 일때도 있는데, 먼 산 바라보다, 어두컴컴한 하늘을 바라보다, 가로수 등을 바라보다 그렇게 내 마음 안을 들여다보기도...


이 밤의 끝자락에서 나는 무엇을 잡으려 하나? 늦은 오후가 돼서야 집밖을 나왔다. 이런 기분일 때가 어디 한 두번인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시시로 수시로 겪은 거라서. 익숙하기도 한데, 이젠 제법 잘 다스릴 줄 알게 되었다고 생각은 하는데... 그래서 이 우울에 지지 않으려기보단 내버려두기를 선택하는 것도 있다. 이내 곧 사라질 것이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 우울한데 우울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우울한데 우울하지 않은척하고 싶지 않다. 그런 쿨함이 이젠 내게 더는 매력적이지 않다. 우울하면 우울한 채로, 기쁘면 기뻐하고 즐거우면 즐거워하고 행복하면 행복해하고 슬프면 슬퍼하고 외로우면 외로워하고 무엇이 문제일까. 


글쓸 때  나를 보면 이토록 잘 가고 있는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게 살고 있는가? 의문이 들곤한다. 나는 정말이지 나를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나를 사랑하는가? 네가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인가? 무엇을 두려워하는 거야?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거야?


내 안의 우울이 어디에서 왔는지 잘 알고 있다. 집착이다. 놓지 못하는 버릇. 놓지 못하는 병. 막상 놓아버리지 못하는 습관, 기억, 행동... 게다가 계속해서 이렇게 살 것만 같은 기분, 실은 망상인데 이런 것들이 내 머릿속에서 혼돈으로 뒤섞여 날 옥죈다. 


우울한 건, 우울감을 느끼는 건 잘못된 것이 아니란 걸 서른 중반이 돼서야 깨달았다. 우울도 실은 잘못이 없다. 우울할 땐 우울해하는 수밖에. 단 그 우울이 오랜 시간 내 곁에 머물지 않게, 깊숙이 침잠하지 않게, 날 무너뜨리거나 흔들만큼 선 넘는 것엔 단호하기. 이런 방식으로 내 안의 우울을 다루고 있다. 


마흔이 코 앞이라는 것도 요즘 내 우울에 한 몫하는 것일까. 아무리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눈깜짝할 새 찾아온 마흔이란 숫자가 도통 익숙하지 않고 언제 마흔이 되었나?


인생이 이런 거였어? 이토록 찰나였던 거야?... 허무와는 좀 다른데, 무튼 묘한 회한과 아쉬움, 그리움이 섞여 있다. 


자연의 기운을 좀 받으려고 했던, 익숙한 이곳을 떠나 바다를 건너 환경의 기운을 좀 바꿔보려고 했던 계획은 순전히 나로 인해 무산되었다. 이 또한 나 인것을. 나로 인한 것을. 누구 탓을 할까. 내 탓인 것을. 그러니 시간과 돈, 아까워 할 것도, 아쉬워할 것도 오롯이 내가 감내하고 감수하면 된다. 


다행스럽다. 제주행 비행기를 놓아버린 건 이미 과거가 됐고 존재하지 않는다. 단, 돌아서며 어떻게서든 이 우울이 내게 깊게 침잠하게 하진 않겠다.는 의지가 이 밤 다시금 평온을 되찾게 했다. 


이대로 머물 것인가? 

계속해서 이렇게 살 것인가? 

진짜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본 적이 있던가? 

진짜 네가 원하는 걸 하면서 살아보고 싶지 않은가? 

이렇게 아무 것도 행동하지 않고만 있을텐가? 


쏟아지는 질문도, 나도, 그걸 알아차리는 나도, 

카페 안 아늑함과 고요함 속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내게 말하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