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취하고 싶은 날. 정확히 말하면 화이트 와인 4-5잔을 마신 뒤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는 취기. 딱 그 정도의 세기로 살짝 취하고 싶은 날이 있다. 추적추적 비오는 거리를 걸을 때도 그렇고 스산한 공기와 바람이 내 뺨을 스칠때도 그렇다. 분명 모든 것이 잔잔하고 잠잠한 것 같으면서도 마음은 참 쓸쓸한 기분일 때. 어제 밤길을 걸으면서 문득 그랬다.
인간은 지극히 자기 안의 고요와 평화와 평안과 평온을 갈망하면서도 정작 내 안의 고요가 찾아오면, 어쩔 줄 몰라하면서 딴 생각을 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 내적 고요도 실은 완벽하기란 어렵다. 완전함.이란 것도 실은 실체가 있는 걸까.
11월이 이토록 따스할수가. 두터운 꽈배기 가디건을 벗어 젖혔다. 이젠 좀처럼 날씨를 종잡을 수 없게 된건가. 뚜렷한 사계절이라는 말이 낯설어져간다. 화창하고 맑고 따스한 오후 햇살에 나를 맡겨본다. 숨을 힘껏 들여마셨다가 내뱉기를 반복했다. "똑똑똑, 자네 있나, 잘 계시나? 오늘 기분은 좀 어때?"
나는 항상 괜찮지 않다. 괜찮지 않음이 디폴트 값이라고 할까. 무심함, 덤덤함을 괜찮지 않음이라고 한다면 그 상태가 이어지다 순간순간 행복, 황홀경, 감사, 감탄, 경이로움, 설렘, 기쁨, 즐거움, 설렘...의 것들이 그 세계로 방문하기를 반복한다는 게 적확하다. 그리고 나란 사람은 본래 슬픔이, 우울이 기본적으로 내재된 사람이란 것도, 그런 성향이란 것도 받아들이게 됐다.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지 않았던 시절, 끝없이 갈팡질팡 방황하기만 했던 시절엔 그 괜찮지 않음이 왠지 모르게 내 생의 전부인 것 같고 계속해서 날 지배하고 통제할 거란 두려움과 압박, 불안이 있었는데, 실은 그것들은 어쩌면 내게 보내는, 날 살리려는 강력한 경보, 메시지였음을 깨닫게 됐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괜찮지 않은 건 이상한 게 아니란 걸. 괜찮지 않은 게 다 내 탓만은 아니란 걸 나는 그렇게 경험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배워가고 알아가게 되었다. 아무 것도 하지 말아보자. 그래도 괜찮을 수 있을까? 나는 이런 방식을 시도해가면서 마치 실험적이듯 해보기도 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괜찮아 혹은 괜찮네.하는 순간이면 그것이 내겐 고요였고 평온이었고 평화였고 실체없는 이유는 더더욱 없는 도통 미스테리한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살면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이 닥칠 때란 수도 없이 많다. 가령 한 달, 두 달 정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로 돈을 벌지 못하게 되었을 때라면, 그 기간동안 나 스스로를 괴롭히고 옭아매고 참 많이 힘들게 했다. 어쩔 수 없는 거라면 이걸 기회로 삼아 더 잘먹고 잘자고 푹 쉬면서 다음에 올 것들에 관해 에너지와 가치를 쌓으면 되는데 그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놀지도 못하고 괜한 걱정, 두려움, 불안, 좌절감으로 흘려보내곤 했다. 그렇게 지나서야 나는 후회하기를 반복했다. "아, 이럴거였으면 진짜 그냥 제대로 쉴 걸. 신나게 놀 걸."하는 것들... 돌이켜보면 당시 마음 근력의 느슨함, 부족 때문이었다.
무엇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돈벌이가 주춤하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아닌데.
그것은 결코 내가 될 수 없는데.
물질적인 것들이 나라고 착각하면서 벌어진 실상은 자기 자신이 쏜 화살이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그렇게 넘어졌다 쓰러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내면의 처절한 몸부림을 맞이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흔히 이야기하는 너만의 속도.라는 말도 방황의 늪에 빠졌을 땐 위로가 되어주지 못한다. 적어도 내겐 그런 말들이 유효하지 않았다. 효과적이지 않았다.
위로는 자기 자신이 하는 것이,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 가장 강력하다.
거창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과의 투쟁이란 실은 어떤 거대한 무엇이 아니었다.
환상도 아니었다. 계속해서 질문하고 답하기를 반복하고 그러다 쓰러져 잠이 들고 한없이 울다 웃다 그러다 어떤 대화의 대목에서는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순간들. 어느 순간 물리가 트이는 듯한 황홀경. 자기 자신만이 알고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것이고 그런 것이 되어야 한다.
매일, 수시로 자기 늪에 빠진다. 자기 늪이란, 내안의 세계이자 내면의 놀이터다. 농후해지고 농밀해지는 내 사유와 사색만큼 현실의 삶도 이와 같이 나답고 나스럽고 아름다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다르지 않게.
어둠일 때, 내 스스로에게 건넨 말들은 이런 것이었다.
"그 누구도 날 구해줄 수 없다."
"내가 날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날 사랑할까. 내가 날 보호하지 않으면 누가 날 보호할까? 그대 뿐이다."
"네 눈물은 네 손등으로 닦아야 한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
"나는 언젠가 죽는다. 분명 죽는다"...
수많은 언어의 나열과 조각들을 펼쳐놓고 내 방식대로 조합하고 퍼즐을 맞춰 나갔다. 가장 위로되는 것들을 골라 내 안에 꺼져가던 불씨를 살렸다. 자기 위로는 이토록 결정적이다.
엊그제 후리스를 입고 요리를 하다 불에 태웠다. 한참 후에 소매 부분이 까슬까슬해서 보니 불에 그을려있었다. 그을린 부분은 딱딱하게 굳었고 꼭 누룽지 탄 부분처럼 됐다. 소생 불가한 것이라서 과감하게 비웠다. 이런 아주 작고 사소한 일련의 사건도 아주 시시하게라도 내게 앎을 준다. 깨달음을 준다. 심각할 것 없이 나와의 인연이 다했구나. 방심했던 탓일까. 후리스에 마음이 떠난 걸 읽은 걸까?...하는 잠깐 스치는 생각들이다. 그 속에서도 분명 배울게 있고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어느 날은 자꾸 생각만해서 어뜩하니. 아니된다. 행동해야 돼.하면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총체적 난국의 상황일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컨디션도 뭐도 정말이지 괜찮지 않은 날이 되는데, 이제는 그러면 그러는 대로, 괜찮지 않으면 괜찮지 않은 대로 문제 없다고. 문제 될 건 없다고.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면 할수록 골돌하면 골돌할수록 그것은 점점 더 내게서 멀어져 간다는 걸 경험적으로 체득한 덕분이다.
글을 써야지.하고서 쓴 적은 없다. 손가락이 절로 노트북 키보드 위로 가있거나 마음이 온통 그곳에 있게 될 때. 내가 글쓰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첫문장이 벌써 써져있다. 그런 글쓰기는 가짜일 수 없다는 생각이 있다. 그것은 내 안에서 출렁이는 요동치는 영혼의 소리겠고 내면의 대화이자 나라는 세계의 만남이다.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