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 벤더스 [퍼펙트 데이즈] 사운드트랙
Reelay Review 01
퍼펙트 데이즈
시작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본영화들로 해볼까 합니다.
첫 번째는 가장 최근에 감상한 빔 벤더스 감독, 야쿠쇼 코지 주연의 영화'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입니다.
퍼펙트 데이즈는 2020 도쿄올림픽을 기점으로 추진되었던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The Tokyo Toilet)'의 일환으로 시작됩니다. 공중화장실들이 지닌 부정적 여론과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고자 시부야에 위치한 17개의 화장실에 16명의 디자이너가 참여하여 대대적인 개선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 기록을 위한 사진집이 4개의 단편영화로, 4개의 단편이 하나의 장편으로 확장되며 영화 퍼펙트 데이즈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야쿠쇼 코지 배우가 연기하는 시부야 공중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하루 일과를 연속적으로 보여줍니다. 히라야마의 일터인 공중화장실들은 모두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에 포함된 화장실입니다.
히라야마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루틴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기상 후 가벼운 세안과 면도를 하고, 식물에 물을 준 다음 유니폼으로 환복 합니다. 현관문을 열고 나와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새벽 하늘을 올려다 보며 옅은 미소를 한 번 짓고는 집 앞 주차장 자판기에서 Boss 캔커피를 뽑아 마십니다. 그리고 차에 올라타 그날 출근길을 함께할 음악을 고릅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카세트테이프를 고르고 재생버튼을 누르면 우리 귀에 익숙한 올드팝이 흘러나옵니다.
히라야마가 사용하는 아날로그적인 물건들은 각박한 현대사회와 대조되며 일상 속 작은 여유와 행복을 불어넣어 주고, 그의 반듯한 규칙 속에서 반복되는 평온한 일상과 함께 복잡한 마음이 정리되는 듯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그리고 그가 출퇴근 길에 카세트테이프로 듣는 음악들은 영화의 근사한 사운드트랙으로서 존재합니다.
PERFECT DAYS - Unofficial Motion Picture Soundtrack
퍼펙트 데이즈 사운드트랙 음반은 따로 발매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음반이 발매된다면 그 포맷은 필히 카세트테이프여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화면비는 우리에게 익숙해진 와이드프레임에서 벗어나 과거 브라운관 TV를 연상시키는 4:3 비율로 촬영되었습니다. 이러한 프레임의 변화는 아날로그 정신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주인공 히라야마의 삶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카세트테이프 음반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CD포맷의 정사각형 프레임에서 다시 컴팩트한 세로형 비율로 돌아가며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작업은 주인공 히라야마가 출퇴근 길에 듣던 음악들로 작업한 플레이리스트 형태의 비공식 사운드트랙(Unofficial Motion Picture Soundtrack) 음반입니다.
영화음악은 크게 음악감독을 섭외하여 작업하는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과 감독이 영화와 어울리는 음악을 선별해 삽입곡 위주로 작업이 이루어지는(Music From The Motion Picture)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누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두 가지 방식을 함께 적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로 예를 들어보면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 존재하지만 [올드보이]에서는 비발디 : 사계 중 '겨울'이, [헤어질 결심]에서는 말러 교향곡 5번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퍼펙트 데이즈의 경우는 삽입곡 11곡과 오리지널 트랙 1곡, 총 12곡이 사용되었습니다.
모바일에서도 청취가 가능하도록 애플뮤직 플레이리스트를 QR로 첨부했습니다.
https://music.apple.com/kr/playlist/perfect-days-tape/pl.u-kv9lb8mTvr9RJb?l=en
[Track List]
SIDE : A
1. The Horse of The Rising Sun - The Animals
2. Pale Blue Eyes - The Velvet Underground
3. (Sittin'On) The Dock of The Bay - Otis Redding
4. Redondo Beach - Patti Smith
5. (Walkin' Thru The) Sleepy Day - The Rolling Stones
6. Perfect Day - Lou Reed
SIDE : B
1. Aoi Sakana - Sachiko Kanenobu
2. Sunny Afternoon - The Kinks
3. The Horse of The Rising Sun(Japanese Ver.) - Maki Asakawa
4. Brown Eyed Girl - Van Morrison
5. Feeling Good - Nina Simone
5. Perfect Day(Komorebi Ver.) - Patrick Watson(*Original Track)
Cassette
카세트테이프 디자인은 극 중 히라야마가 입고 나오는 'The Tokyo Toilet' 청소부 유니폼 컬러를 참고했습니다.
J-Card
카세트테이프 케이스 내부에 들어가는 인쇄물의 이름을 J카드라고 합니다.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접혀 들어가는 모양이 영문 대문자 J와 형태가 비슷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나 봅니다.
J카드 앞면 커버 이미지는 휴일 오후에 집에서 음악을 들으며 누워있는 히라야마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사용했습니다. 'Lou Reed'의 [Perfect day]를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한 음악이 엔딩크레딧에 사용되었는데, 이 곡은 공식 음원으로 발매가 되어 현재 음원사이트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해당 음원의 커버 이미지를 참고하여 카세트테이프 버전으로 편집해 보았습니다.
J카드 뒷면에는 영화 후반부 히라야마의 인생을 압축해 보여주는 듯한 야쿠쇼 코지 배우의 클로즈 업 스틸 컷을 사용했습니다. 이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곡은 'Nina Simone'의 [Feeling Good]입니다.
영화에서는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과거의 시간은 조명하지 않습니다. 오직 충실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현재에 집중합니다. 히라야마는 점심시간이 되면 어느 신사의 벤치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취미가 있습니다. 그가 프레임 안에 담는 장면은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작은 햇살입니다. 이 것을 일본어로 '코모레비(木漏れ日)'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코모레비에서 보여지는 빛과 그림자의 상관관계는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있는 듯 합니다.
크게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일상에 작은 균열이 생기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 균열은 때때로 우리 안에 내재된 나약한 자신을 마주 보게 만듭니다. 과거의 나약했던 자신이 선택한 현재의 삶을 묵묵히 살아내고 작은 아름다움 들을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완벽한 날들(Perfect Days)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우리 주변의 코모레비가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2023 Tokyo Internatioanl Film Festival Merchandise Remake
이어서 소개할 작업은 영화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의 2023년 도쿄국제영화제 오프닝 스크리닝 당시 관객에게 증정했던 특전 카세트테이프의 복각 작업입니다. 카세트테이프와 팸플릿 모두 도쿄국제영화제 한정 배포/비매품으로 발매되었습니다.
실제 당시 제품의 이미지를 참고하여 최대한 흡사하게 작업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J카드 메인 커버 이미지에는 주인공 히라야마가 취침 전 책을 읽는 모습과 영화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코모레비(木漏れ日)'의 이미지를 합성한 사진이 사용되었습니다.
[Track List]
SIDE : A
야쿠쇼 코지와 나가사와 이츠키가 연기하는 라디오 드라마'The Angel of Toilet'(PERFECT DAYS 시나리오 집필 전 단계 작품)
SIDE : B
에모토 토키오가 연기하는 '다카시(극 중 히라야마의 젊은 동료직원)'가 남긴 자동응답 전화 메시지
카세트테이프와 함께 증정했던 팸플릿의 경우 기존 출력물의 크기를 변형하여 완전히 접었을 때 카세트 케이스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작업했습니다.
앞장은 히라야마의 물건들이 담긴 사진이 사용되었고, 뒷장은 특전에 대한 정보와 히라야마가 화장실 청소 중 우연히 발견한 쪽지 속 빙고게임 그래픽이 사용되었습니다. 복각 작업의 경우 고증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오리지널 제품에 사용된 서체를 찾아야 하는데, 서체뿐만 아니라 자간과 행간까지 고려하여 작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꽤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특히 이번엔 한글이나 영문이 아닌 일본어로 된 문장들을 다뤄야 해서 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테이프에 담긴 것이 음악이 아닌 영화와 관련된 또 다른 이야기라는 점이 매력적이었고, 해당 작업을 진행하게 된 이유였습니다. J카드 뒷면에 QR을 삽입해 카세트 플레이어가 없는 사람들도 모바일로 청취할 수 있도록 한 배려가 돋보이는 디자인입니다.
이번 복각 작업에 사용된 QR도 실제 링크로 작업하여 디테일을 살렸습니다. 일어로 되어있어 번역이 필요하겠지만 스포는 자중하고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방문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올 해가 가기 전에 도쿄에 방문해서 히라야마의 하루 일과를 따라가는 여행을 해보고 싶습니다. 틈틈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소들을 구글맵에 저장하며 그날을 기다리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