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시 - 소멸의 궤적
아팠다
온몸이 찢겨나가는 고통은 살아생전 겪어보지 못했던 쓰라리고 끔찍한 최후였다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누군가를 닦아주고 쓰다듬기 위해서 태어난 내가
수류탄을 덮어주게 될 줄은
온몸이 불살라질 줄은 정말 몰랐는데,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
나의 쓰임새는 내가 정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누구보다 따뜻한 휴지가 되고 싶었는데 말이다
이렇게까지 불타올라 활활 타버리는 결말은
그 어떤 휴지도 원하지 않았던 비극적 결말 아닌가
초라하고도, 초라해서. 내 처지가 안쓰러워서
눈물 흘리고 싶어도 그 눈물 닦아줄 몸뚱이조차 남아있지 않아서
공기 중에 은은히 퍼지는 내 몸의 먼지들 속에서
조용히 한 방울씩 털어내는 중이다
창문 밖에서 바람이 불어 들어온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나를 유유히 어디론가 데려간다
아아 이것은 사랑이 담긴 구원의 손아귀인가
그러나 머지않아 깨달은 것은, 바깥세상이 더 가혹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나보다 더 많은 먼지들이 나를 덮치고, 섞여서 나는 더러운 세균이 됐다
언제 어디서 지하의 더러운 물길에 빨려 들어가 남은 일생을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비루한 찌꺼기의 일부분이 됐다
세상의 바람은 계속 불고 있는데
나의 가치는 점점 지구의 내핵을 향해 바닥을 뚫고 저 밑까지 내려가버려서
그냥, 곱게 쓰레기통에 버려질걸.. 후회의 밤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