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시 - 소멸의 궤적
마지막 한 장이 뽑혀나갈 때 나는
내게 남은 마지막 희망을 적출당하는 느낌이었다
포근한 휴지를 품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사람들은 내게서 뽑아가기만 할 뿐
어떤 애정도 나눠주지 않았다
나는 휴지만 뽑힌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을 수 있는
따뜻한 수프 한 숟가락의 가능성마저
찌그러진 내 모습처럼
무심하게 짓밟혔다
나는 저 쓰레기통의 신세가 부럽다
저 친구는 언젠가는 배부를 때가 올 텐데
비어버린 내게는 든든한 밥 한 끼 대신에
고독하고 쓸쓸한 분리수거장이
나를 맞이한다
많이들 착각하는데
재활용은 나의 쓸모를 다시 살려주는 것이 아니다
나로서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고
나를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든다
내가 배고플수록
쓰레기통은 배불러간다
속이 비워져도 버려지지 않는 꿈을
저 쓰레기통은 살아가고 있는데
순간의 배고픔에 칭얼거리는 모습이
자신의 처지에 감사하지 못하는 모습이
썩 불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