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수류탄

연작시 - 소멸의 궤적

by 몽중상심

미안하다


나는 휴지를 처음 불태웠을 때 안도감을 느꼈다. 사람을 해치지 않아서, 생명을 해치지 않아서, 아무에게도 피해를 안 줘서 정말로 행복하고 의미 있는 결말이라고 느꼈는데 어째서인지 나로 인해 피눈물 흘리는 누군가가 생겨났다.
불타버려 길거리의 비루한 먼지가 된 휴지
비어버려 외롭고 쓸쓸해하는 쓰레기통
쓰레기통이 부러워 질투하는 휴지곽까지
모두, 내 잘못이다
​나는 죽을 때 따뜻함이 온 세상을 다 덮을 정도인데 왜 그 따뜻함이 온전히 가지 못하고, 그 온도 다 어디로 흩어지고 검은 재만 흩날리며 힘없이 식어가는 눈바람에 꺼져가는 모닥불 같은가
요란하지만 순간일 뿐, 아무도 나의 끝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고, 누군가를 찾아 원망하며 이 결과를 수건 돌리기 게임처럼 떠넘기는 무책임함이 정녕 내게서 발생한 것이란 말인가
내가 수류탄이라는 사실 자체가 부끄러워졌다. 무슨 일을 해도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없는 나는, 프랑켄슈타인에 나오는 괴물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나는 창조주를 미워할 자격이 없다
내가 단 한 번이라도 수류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나는 억울하다고 한 번쯤은 소리쳤겠지
그러나, 그 생각을 죽음과 얼굴을 마주 보는 순간 깨달아버렸다.
너무 늦은 나에게는 일말의 자비도 없어서, 핀만 남은 채 사라져 버린 나의 의지도 그 핀에 고이고이 옮겨서.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거듭할 뿐이었다
식어버린 자신의 모습에서도 타인에게 온기를 나눠주기를 소망하는


비극적인 다정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