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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계절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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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언캐슬 Dec 01. 2024

달력을 해부하는 공식

달력에도 골격과 근육이 있고 피가 흐른다


초승에서 보름까지

그믐에서 신월까지

열두 번을 해부할 때마다

혈관에서 검은 피를 쏟아낸다

달랑 한 줄만 남겨진 달력의 혈맥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숫자들이 복도 끝으로 사라진다


혈액 속에는 압축된 약속만 녹아있어

남은 시간은 마음이 조급하다

새 칸이 몰려오고 있다

열한 장 시간을 모두 되새김해 보지만

이별은 언제나 서늘하다


바하르 하삽*이 바다를 계산할 때

12월은 번식력이 떨어지고

시한부 같은 13월의 목적이

우줄우줄 벽 속으로 순례를 떠난다

겨울나무 기분은 가지 끝 까치밥처럼 대롱거리거나

번식의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해 엉거주춤

미소만 짓고 있다


달력의 마지막 장, 마지막 줄, 마지막 칸을

떨리는 손으로 쓰다듬으면

겨울 가지에도 마법처럼 새순이 돋는다


달은 기울어야 다시 차오르는 공식

달력은 뜯어야 새순이 돋는 생명


 *고대 에티오피아의 달력. 1년이 13개월로 되어있는데, 13월은 묵은해와 새로운 해의 가교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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