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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계절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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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언캐슬 Oct 21. 2024

바람의 말


그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는 개울가에도 있었어

고샅을 따라 흘러 들어가는 소리로 있었지

종려나무 이파리가 탈색되어

햇살이 관통하는 곁에도 있었어

되돌아가는 모든 길모퉁이마다 비상구를 만들었고

회전문이 덜컥 멈출 때는 입단속하곤 했었지


그래,

가까이하지 않는 것은 또 다른 의미야

접할수록 두두룩이 깊어지는 현상에

살아있음을 단정 짓지 못하는 것

죽음은 삶의 각질을 벗겨내는 것이지

바람의 말은 살아났어

녹슨 물음표를 닮은 삐꺽거리는 질문들

의문은 살아서 바람의 방향이 궁금해졌지


한때는 남쪽과 북쪽의 마음이 흔들렸고

서쪽과 동쪽의 모호한 경계선에서 중심을 잡아야 했어

한쪽의 언어가 다른 쪽 혀를 눌러

헤게모니 장을 펼쳐도

국경을 거스르는 아찔한 통증에도 애써 둔감했어

무관심도 관심이라는 논리는 시소 중심을 찾지 못했지


게걸스러운 밤은 유난히 길었고

불면증은 죄의식에 창문을 모두 열었어

어둠을 먹어 치우는 샐녘 폭식증에

새벽달이 밤과 아침을 차별했어

기억은 바람을 타고 빠른 속도로 시냅스를 통과했지


달아난 글자의 기분은 알지 못했어

변명도 바람의 말인 것을 이해하려 했을 뿐

바람은 세월의 유언을 전하지

바깥으로 향한 발톱에는 악의가 없다는 것도

바람의 말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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