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킹홀리데이' 과연 어떤 사람들이 가는 것일까? 흔히들 생각하는 워홀을 떠나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외국에서 새로운 견문을 열고 싶고,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을 하고 싶어하는 모습일 것이다. 이것은 워홀러의 기본적 성향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만났던 한국을 떠나서 호주 워홀을 온 사람들 대부분은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취직이 어려워서, 대입에서 쓴 맛을 봐서, 한국 회사 생활 몇 년 후 진절머리가 나서, 가족 간의 관계가 너무 힘들어서 호주로 왔다고들 한다. 어쩌면 외국에서 돈을 번다는 ‘워킹홀리데이’라는 거창한 이름 아래에 합법적으로 숨 쉴 수 있는 도피처를 바랐을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워홀 비자 신청의 방아쇠를 당긴 계기는 조금 달랐다.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대부분의 사람과 달리,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교대를 다니며 '임용 한방'이라는 선배들의 달콤한 말을 믿으며 학업에도, 인간관계에도 큰 스트레스 없이 지냈다. 즐겁고 밝게 지낸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 나였지만, 내 마음 속 어딘가에는 나를 답답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친구와 일상적인 얘기를 잘 하고 있다가 갑자기 이유 없이 집에 가고 싶다거나, 쉬면서 침대에 누워 재미있는 영상들을 보는데 오히려 답답한 마음이 든다거나, 평범한 티셔츠를 입으면 성인으로 보지 않을까봐 늘 옷 입기 전에 골똘히 고민하는 나 자신에게 실망을 한다거나, 한 때는 친했지만 연락하지 않고 지내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드리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험들을 하곤 했다.
보통 사람들이 겪는 일반적인 감정일수 있지만, 근원을 알 수 없는 감정들의 원인을 알기 위해 여러 서적과 강의들을 봤다. 혹자들은 '유아기의 부모와의 관계', '부모의 양육태도 및 가정환경'이 지금 내 감정의 원인이라 한다. 하지만 내가 첫째라 나에 대해 조금은 서툴렀을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부모님과 이미 화해를 하였고, 현재의 내 문제를 이십 년 전 과거에서 찾는 것은 딱히 의미가 없어보였다.
내 현재 감정과 문제의 원인을 과거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런 답답한 모습을 현재에서 직면하는 것이 필요했다. 나에게 한국의 유교 관습적인 생각을 들이밀지 않는 곳에 갔을 때 비로소 자유롭게 답답함을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곳은 한국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워홀을 갈 것이라는 결정이 그리 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임용 티오는 하락세를 보이고 경쟁률은 늘어나는 추세여서, 교대생이 휴학을 하는 경우는 일반적인 종합대에 비해서는 드문 편이다. 한 해 늦게 임용판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지금 내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으면 결국 임용 이후 교사로서의 삶에서도 해결을 짓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네 탓이 아니야’라는 류의 서적이 유행하는 시점에서 내 감정을 남 탓으로 돌리고 안주하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말을 마음속에 새겼다. 물론 시간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어서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내 삶은 달랐을까?’라고 아쉬움을 토로할 나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시기 적절하게 한 문구를 보았다.
‘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한다.’
일단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면 나의 답답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떠났다. 호주 멜버른으로. 나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이 될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