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킹홀리데이 시리즈 | 완벽주의 탈출기|
호주는 직원을 채용하기 전에 트라이얼을 시킨다. 앞으로 계속 일을 해도 될지 결정하기 전에 1~2시간 정도 일을 시켜보는 것이다. 하지만 호주에 막 도착했던 나는 호주 직장 경력도 없어서, 구직을 해도 트라이얼 기회조차 얻기 어려웠다. 반갑게 연락 왔던 레스토랑의 연락을 받고 떨리는 마음으로 갔다. 그리고는 웨이트리스 트라이얼 동안 내가 얼마나 능숙하고 성실하게 하는지 보여주려 했다. 1시간 정도의 트라이얼이 끝났다. 그리고 옆에서 지켜보던 오너는 “How’s work?(일은 어땠나요?)”라는 질문을 던졌고, 나는 이 한마디를 알아듣지 못했다. 이전까지는 영어에 대한 자부심이 꽤 컸었고 어느 정도 외국생활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려운 문장만 공부했었던 탓인지, 이 쉬운 한 마디에 나는 두 눈만 껌뻑였다. 그리고 오너는 너는 영어를 잘 못하니깐, 자신의 다른 가게인 푸드코트에서 일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일자리를 얻어서 기뻐해야 하는 마음은 뒤로한 채 영어를 잘 못한다는 대표의 말을 곱씹으며, 레스토랑 대표의 영어 발음을 탓했다. 아시아계 사람 영어 발음은 너무 어려워. 내가 영어를 못 하는 것이 아닌데..
호주 생활에도 익숙해지고 영어 실력도 꽤 쌓은 후에 다시 이 시점을 떠올렸을 때, 나 자신이 꽤 부끄러웠다. 내가 내 영어 실력 자체를 과대평가해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초등학생 때부터 영어는 내가 가장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우물 안 개구리였다 해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영어 못하는 사람’인 것과, ‘영어 못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다.
스스로의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자랑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누구나 쉽지 않다. 이 경우 나에게 있어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상황을 부정하는 방어기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 사람 발음이 이상해서”와 같이, 남 탓으로 넘겨버리면 사실 속은 시원하다. 그냥 똥 밟은 경험이라고 생각하면 되니깐. 하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남 탓을 하는 자신이 아름답지 않다는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지금은 나 자신이 기대했던 능력에 미치지 못하였을 때는 상황을 그대로 수용하려 한다. 생각도 습관이라는 말처럼 이제는 의식을 거치지 않아도 ‘내가 나를 꽤나 과대평가하고 있었나 보다. 내 실력이 생각했던 기준에 미치지 못해서 아쉽네.’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능력이 모자라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자신감 하락, 성장의 기회와 이별만 겪게 될 수 있다. 자신에게 실망했다는 것은, 그만큼 자부심을 가질만한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기에, 스스로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과 자신의 노력, 가치를 부정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그래서 한 마디 꼭 붙여서 생각하기.
‘아직 성장할 기회가 남았네. 좋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