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naissance Feb 16. 2024

단점모음.zip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대화할 때는 물론이요 글도 마찬가지다. 성공한 사람의 강연에 별로 관심이 없는 이유도 강연 내내 자기 자랑만 늘어놓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과의 대화를 나눠야 하는 경우가 오면 어떻게 해서든 자리를 피한다. 자서전이 안 팔리는 이유가 뭐겠는가. 아무도 자기자랑만 늘어놓는 것을 읽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단점과 치부를 드러낸 자서전은 없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사에 대해 제 3자가 쓴 책을 헌책방에서 접하고 재밌길래 사 본 적이 있는데, 서문에 그 인사의 허락을 맡지 않고 본인 마음대로 썼다는 것을 밝힌다. 그래서 책이 재밌었다. 추악한 면까지 모두 보여주니까. 그 인사는 타계 후 자서전이 따로 나오는데 죽기 전에 본인이 작가를 고용해서 쓴 책이라 재미가 없었다. 우리는 완벽한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 주인공도 불완전할수록 매력있다. 그래서, 나의 단점에 대해 써보기로 했다. 장점을 모두 빼고 단점만. 그런 글이 잘 없으니까. 


나는 소심하다. 영화 감독이 되었더니 섬세하다, 예민하다 는 식으로 좋게 포장해주던데 그냥 소심한 거다. 어렸을 때 무척 내성적이었고, 소아비만이라 놀림을 당했다. 이성이 먼저 날 좋아해준 적도 없으니 짝사랑만 했다. 고백해서 성공한 적도 없다. 그런 경험이 만들어낸 열등감 때문에 누군가가 나를 얕잡아 보는 것에 대해 극도로 예민하게 생각한다. 잘 긁힌다는 소리다. 아무도 나를 얕잡아 볼 수 없게 만들겠다는 이상한 집착을 가지고 있고, 그게 여전히 내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열등감은 죽을때까지 극복이 안 될 듯 하다.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성적을 받고 대기업을 가고 멘사 테스트를 통과해도 나는 여전히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고 느낀다. 틈만 나면 나의 지적 능력을 증명하고자 한다. 대학 서열화에 반대하고 간판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을 혐오하고 남들에게는 다른 사람이 얼마나 지적인지 알려면 대화를 나눠보면 된다고 하면서, 나 스스로는 어떻게든 무식해 보이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나와 대화를 나눈 사람이 단 한번도 나의 지적 능력을 의심한 적이 없지만, 난 그것을 신경쓰고 있다. 끊임없는 자기 증명의 욕망. 


불만 덩어리다. 내 브런치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어둡고, 불만에 가득 차 있다. 언젠가 1호선에서 세상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아름다운 면보다 추악한 면을 더 잘 발견한다. 한국 땅에서 태어나지 않고 중동 국가나 산업화 이후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극단주의자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사회 시스템을 갈아엎고 새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끔찍한 얘기를 쓸 것 같아 여기까지만. 만족할 줄 모르고 언제 어디서나 불만거리를 찾아낸다. 어둡고 치열한 독립장편을 찍은 감독이 엄청 밝은 경우가 많은데, 나는 반대로 밝은 독립장편을 찍었는데 감독이 어두운 케이스다. 내 쪽이 훨씬 희소한 경우라 나를 만난 적잖은 감독들과 제작자들이 당황을 했다. 이렇게 어두운 사람인 줄 몰랐다고. 독립장편은 어둡고 진중한 작품이 투자받을 확률이 높음에도 나는 밝은 영화를 쓴 케이스니 얼마나 이상했겠나. 당연히 밝은 사람일거라 가정해버린 것이다. 때때로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냥 처절하게 어두운 영화를 만들 걸. 그런 독립장편으로 성공한 감독이 밝은 상업 장편 잘만 찍던데. 또 여기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네. 


구두쇠다. 경제 관념이 썩었다. 돈을 쓸 줄을 모른다. 그런 법을 못 배웠다. 아이에게 경제관념을 가르치기 위해서 용돈을 주고 용돈기입장을 쓰게 한다는데, 우리 부모님은 내가 중학교 다닐때까지 용돈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경제 관념은 안 쓰면 된다 이다. 가난한 예술가로 살아가기엔 좋지만 나도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데, 남에게 잘 베풀질 않는다. 생일 선물도 맨날 받기만 하고 갚지를 않는다. 차라리 안 받으면 속이 편할거라 생각한다. 진짜 최악의 인간이지 않나. 자기에게만 안 쓰는건 괜찮다. 하지만 남에게까지 쓰지 않는건 사회적으로 올바른 인간으로 볼 수 없다. 난 다분히 반사회적인 인간이다. 


소심함과 어두움과 반사회성은 나를 동굴형 인간으로 만들었다. 사람을 잘 만나지 않는다. 어렸을 때야 불러주는 사람이 많으니 별 문제 없었지만, 다들 결혼하고 바빠지는 나이가 되면 인간관계도 노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먼저 연락하고, 약속을 잡고, 사람과 어울려야 하는데 나는 누군가 부르기 전에 밖에 나가질 않는다. 누군가와 연을 맺게 되어도 연락을 하지 않고, 밥을 먹을 타이밍이 되어도 약속을 잡지 않는다. 그러니 관계에 발전이 없다. 결국 언제나 혼자다. 좋은 사람들이 주위에 있어 이런 나를 밖으로 끄집어 내주긴 하지만, 그 사람들하고만 있어서는 내 세계가 확장될 수가 없다. 점점 더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영화시장은 이제 관계가 없는 사람에겐 기회를 주지 않는다. 내가 관계를 만들어가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하지만, 맨날 생각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인간이다. 그럼에도 살아간다. 그러니 당신도 살아가라. 나같은 사람도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길 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재개발의 목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