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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Feb 16. 2024

발전의 방향은 한결같아

디스토피아(나에게만)

현 인류 문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자본주의, 혹은 석유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석유와 자본주의는 동의어로도 볼 수 있다. 지구온난화로 슈퍼 바이러스가 창궐해도 자본주의의 바퀴는 멈추지 않았다. 석유의 영향력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소리다. 자본주의가 가지는 장점도 많겠지만 언제나처럼 나는 어두운 면을 조명하려 한다. 


석유문명의 발전 방향은 한결같다. 많은 자본을 가진 자가 더 많은 자본을 가지게 된다. 공산주의 민주주의 나눌 필요도 없다. 이미 공산주의 국가들도 자본주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똑같은 양상으로 간다. 가장 가까운 예는 서울이다. 서울은 점점 커져만 간다. 서울시 면적은 똑같지만 서울 주위 위성도시가 점점 커진다. 지방이 소멸 위기라고 하면 시골을 떠올리는데 이젠 광역시들도 소멸 위기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GTX를 깐다. 발전 방향이 한결같다. 더 큰 자본을 가진 자에게 더 많은 자본이 몰리는 구조. 


우리는 이미 많은 좋은 것들을 잃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금세 새로운 세상에 적응한다. 깨끗한 공기를 잃었고, 조용한 환경을 잃었고, 하늘을 보는 시야각을 건물에게 뺏겼다. 지근 거리에 시장과, 인쇄소와, 도장집과, 열쇠집과, 세탁소와, 구두 수선소가 있던 시절은 걸어서 갈 수 있는 반경에 필요한게 다 있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게 많으니 불편함을 못 느낄 수 있지만, 서울의 부동산 값이 올라갈수록 소상공인은 점점 더 없어질 것이다. 나사를 예로 들어보자. 예전엔 나사를 파는 곳이 많았다. 나사집이나 철물점, 시장 등 다양한 곳에서 나사를 구할 수 있었다. 뭔가를 조립하거나 수리하다가 나사가 부족하면 똑같은 나사를 들고 상점에 찾아가 같은 사이즈를 달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자로 재가며 똑같은 나사규격을 인터넷으로 찾아 주문해야 하고, 한 두개는 팔지 않아서 십수개를 사야하며, 받았는데 사이즈가 맞지 않으면 다시 새로운 나사를 주문해야 한다. 수리나 조립을 하지 말고 완성품을 사면 되는거 아니냐고? 맞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을 그래서 한 거다. 


나사가 부족하면 기존 제품을 버리고 새로운 제품을 사면 된다. 지방이 불편하면 서울에서 살면 된다. 영화관도 필요없다. 넷플릭스로 보면 된다. 코로나 시절 이후 아직도 극장에 가지 않은 사람이 많다. 내가 영화감독이라는 걸 알게 된 사람들 중 이런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코로나 이후 극장에 가지 않다가 최근에 갔는데 참 좋더라고요.' 그렇다. 극장이 벌써 잊혀진 장소가 되어버린 사람이 많은 것이다. 나사집처럼, 세탁소처럼, 명함집처럼. 누군가에겐 굉장히 소중한 장소지만, 누군가에겐 없어도 그만인 장소인 것이다. 극장이 없어져도 사람들은 별로 불편해하지 않을 것이다.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면 되잖아, 라며 극장을 그리워하는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할 것이다. 발전 방향은 한결같다. 그래서 이 다음이 더 끔찍하다. 


AI의 발전이 눈부실 지경이다. 너무 빨라서 산업혁명 이후 가장 큰 변화가 눈앞에 닥쳤다. 당장 내년이 될 수도 있다. AI에게 직업이 대체될 직종 중 하나가 아이러니하게도 영화감독이다. 엄밀히 말하면 영화 제작에 관련된 모든 직종이라고 할 수 있다. 감독, 촬영감독, 음향감독, 음악감독, 배우, 작가, 편집, VFX 모두 대체될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파업이 괜히 일어난게 아니다. 당장 대체될 위기에 처하니 인간들이 처절한 사투를 벌려서 몇 년이라도 밥그릇을 지키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언제나 그렇듯, 같은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모든 인력은 AI에게 대체된다. 넷플릭스, 유니버설 스튜디오 등 초대형 기업 몇 개만 남고 모든 영화 인력들이 사라질 것이다. AI가 만든 영화가 인간이 만든 영화만큼 재밌지 않을 거라고? 극장용으로 제작된 영화가 넷플릭스 영화보다 재밌다는 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 같나? 실제 극장용 영화의 완성도가 OTT용 영화보다 훨씬 높다. 한국 영화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똑같다. 하지만 그건 나같은 영화감독이나 마니아, 평론가들의 이야기지 일반 대중에겐 큰 차이가 없다. AI가 쓰고, AI 배우가 나오고, AI가 찍고 편집한 영화가 나오면 사람들이 인간의 작품보다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불평할까? 넷플릭스 영화의 완성도가 극장 영화보다 떨어진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많지 않듯이, 사람들은 재밌게 볼 것이다. 


이미 AI는 책을 쓰고 있고, 만화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작곡을 하고 있다. 창작은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하는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상이 온다. 그때가 되면 '사람이 만들 때가 재밌었는데' 해봤자 'AI가 만든걸 봐'라는 소리만 들을 것이다. 지근 거리에 세탁소가 있는 시절을 그리워 하는 나에게 '세탁특공대를 써'라며 어이없어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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