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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Mar 23. 2024

아끼는게 능사는 아니다

배부른 소리가 될 수도 있다.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사람에겐 분명 그런 글이다. 미리 양해를 구하고 써본다. 


우리 집은 그렇게 가난한 집이 아니었다. 고속 성장 시대에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금방 집안 사정이 좋아졌기 때문에, 나와 세살 터울이 나는 형은 가난을 기억하지만 나는 가난을 기억하지 못한다. 연탄불을 뗐던 빌라 아파트도 가난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좋은 좁이었다. 그런 집조차 내 기억엔 1여년 밖에 남아있지 않고,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나는 집안이 가난해서가 아니라, 첫째에게 몰빵 투자를 한 부모님의 둘째로 태어나 가난을 배웠다. 


형은 항상 용돈을 받았다. 나는 중학교때까지 용돈을 받지 못했다. 나보다 가난한 친구가 사주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부모님은 나에게 용돈을 주는 것을 아까워했다. 그런 배경으로 매우 독립적인 성격이 되었고, 대학교 때에는 과외를 통해 쏠쏠한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해외 여행이라던가, 노트북이라던가, 큰 지출은 언강생심이었다. 교환학생을 합격했는데 돈이 없어서 취소하고자 했다. 우리 학교는 교환학생 취소자에게 한 학기 학교 청소라는 벌을 내렸다. 나는 애초에 청소하는 것에 대한 아무런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서 까짓거 한 학기 청소하자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은 뜯어 말렸다. 왜 너가 청소를 하느냐고. 이게 다른 사람들에겐 굴욕적인 건가 의아했다. 좋은 학교 다니는 애들한테는 청소가 불명예구나. 왜 취소하는지 묻는 담당자에게 돈이 없다고 대답했다. 담당자는 나에게 장학금을 추천해줬고, 딱 두 명 뽑는 장학금에 뽑혔다. 내가 받은 장학금은 4천 유로였다. 600만원 정도니 큰 돈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한 달 기숙사비가 60만원이었다. 반년을 버티기엔 턱없이 적은 돈이었다. 그래서 세 번 경유를 하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대만에서 16시간, 아람에미리트에서 10시간을 기다렸다가 환승을 해야하는 극악의 스케쥴이었다. 하지만 직항은 120만원. 두 배 가격이었다. 난 주저없이 환승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하루에 한끼 먹으며 버텼고, 100만원을 남겨왔다. 


지긋지긋했다. 최신 핸드폰과 노트북을 사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석사를 미국에서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도와줄 리가 만무해서, 빨리 취직을 하고 싶었다. 돈이나 벌고 싶었다. 그렇게 취직을 해서 월급을 받는데, 씀씀이가 커지지 않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큰일났다. 몸에 절약이 베어버렸다. 돈이 없어서 아끼는 건 당연한 거지만, 돈이 있는데도 아끼는건 구두쇠다. 직장인이 다가오지 않을 미래를 위해 아껴야 된다는 말은 영원히 돈을 쓰지 않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일부러 씀씀이를 늘려보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 됐다. 1인분에 만원이 넘는 음식을 먹는 것도 아까워했고, 십만원이 넘는 신발을 사는 것도 아까워했다. 겨우 조금씩 씀씀이를 늘려갔지만 회사를 그만뒀고, 영화를 시작했다. 절약은 자신 있었지만, 다시 씀씀이가 줄어드는 것은 걱정이 됐다. 빨리 성공하면 되지, 생각 했지만 여전히 나는 미생이다. 만원 쓰는 것도 아까워하는 생활을 너무 오래 하고있다. 


처음으로 1고당 천만원짜리 계약을 했을때, 내가 나에게 해준 선물은 뭐였을까? 노트북을 바꿨을까? 핸드폰을 바꿨을까? 데스크탑을 바꿨을까? 정답은 '아무것도 사주지 않았다'이다. 사실 첫 각색 계약을 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1고당 천만원을 받게 되면 나에게 선물을 사주자고 미뤘다. 1고당 천만원짜리 계약을 했을때 나는 '연출 계약을 하게 되면 사주자'고 또 미뤄버렸다. 이게 내가 말했던, 씀씀이가 줄어들까봐 걱정했던, 가난의 고착화다. 나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것이 아니라 심적으로 가난하다. 이게 너무 오래 지속되었고, 이젠 큰 돈을 벌어도 쓰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연출 계약을 하게 되면 그러겠지. 연출료 1억 계약서에 서명을 하게 되면 스스로에게 큰 선물을 해주자고. 


아끼는게 능사는 아니다. 어린 시절 만났던 이성 중에 도곡동의 으리으리한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있었다. 집 값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집에 살면서 항상 '사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녀는 항상 미래의 무언가를 위해 돈을 아껴야 해서 돈이 없다는 말을 했다. 그때 깨달았다. 가난이 반드시 경제적 상황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도 존재한다고. 외할아버지가 최근에 돌아가셨는데, 평생 손자 손녀들에게 세뱃돈으로 만원 초과를 주지 않으셨던 분이다.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나서 자식들은 아버지가 어마어마하게 재산을 많이 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차피 들고 가지고 못할 돈을 평생 모으시기만 했다. 오형제 중 셋이 가난하게 살았지만 할아버지는 도와주지 않았고, 본인에게 재산이 많다는 사실도 숨겼다. 나는 도곡동 친구나 할아버지 처럼 살고 싶지 않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아도 삶을 풍족하게 살고싶다. 다짐에 또 다짐을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다음주에 휴가를 떠나는데 싼 숙소만 찾고 있는 내 모습에 화가나서 쓰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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