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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Apr 09. 2024

한국영화가 없는 세상

일주일의 짧은 휴가를 마치고 현실로 돌아왔다. 한국에 오자마자 나를 맞이한 뉴스는 영화발전기금 폐지와 영진위 뉴스레터의 한국영화 제작상황판이었다. 한국영화는 현재 신규 투자된 대형 영화가 없다. 당장 내년부터 극장에서 한국 영화가 사라질 것이다. 그럼 뭐 어떻느냐고 생각할 것 같아서 그 세상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자국 영화 시장이 잘 나가다가 한순간에 고꾸라진 케이스는 널렸다. 대부분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으니 나라별로 무슨 이유로 자국 영화가 망했는지 분석하는건 한도 끝도 없다. 오히려 반면교사 케이스를 보는 것이 훨씬 의미있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자국영화 시장이 살아남은 프랑스가 좋은 예이다. 프랑스는 영화에 대한 국민적 사랑이 지대하고, 그래서 프랑스의 영진위라고 할 수 있는 CNC의 파워가 막강하다. 프랑스의 모든 방송사, 프랑스에서 서비스를 하는 모든 OTT는 CNC에 돈을 내야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KBS, MBC, SBS, JTBC, TV조선, 채널A, TVN 등 종합편성 채널들이 영진위에게 돈을 내는 꼴이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웨이브, 티빙, 쿠팡 도 영진위에게 돈을 내는 꼴이다. 개인도 CNC에게 돈을 내는데, 세졔혜택 중에 나라에 돈을 낼지 CNC에 돈을 낼지 선택할 수 있게 한다고. 그래서 개인으로부터 나오는 자금도 상당하단다. 나도 세금신고를 하는 프리랜서로 홈택스를 통해 매년 5월 세금신고를 하는데, 내가 내는 세금 중에 일부를 영진위에 낼 수 있도록 하면 당연히 영진위를 택할 것이다. CNC의 막강한 힘이 없었다면 제아무리 프랑스라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 왜 이리도 자국 영화 시장이 버티기 힘드냐, 영화는 다 돈이기 때문이다. 한 편에 3000억을 때려붓는 헐리우드를 도대체 무슨 수로 이길 수 있겠냐 이말이다. 


1년 내내 헐리우드 영화만 틀어도 극장은 영업이 가능하다. 그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영화를 만들어낸다. 우리나라에는 A급 블락버스터 영화만 들어와서 그렇지, 미국의 B급 중저예산 영화의 사이즈는 우리나라 블락버스터의 몇 배다. 1000억이 넘지 않으면 중저예산이라고 하니 얼마나 사이즈가 큰 시장인가. 한국 영화가 사라지면 이런 중저예산 영화들이 극장을 메울것이다. 자국영화를 지키는건 시스템과 국민의 관심이었다. 우리나라 국민은 이상하리만치 예술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톡까놓고 예술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는데, 마치 예술에 돈을 쓰는건 사치인 것 처럼 행동한다. 노래를 듣지 않고, TV를 보지 않고, 영화를 보지 않고, 웹툰을 보지 않고, 책을 보지 않고 며칠을 살 수 있을까? 한국에서 노래를 만들지 않고 영화를 만들지 않아도 소비할 컨텐츠는 넘쳐나기 때문에 상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영화는 컨템포러리 예술로 볼 수 있다. 코로나 이전 영화와 이후 영화가 왜 차이가 나겠는가.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절에 개봉하지 못했던 영화르 지금 개봉하기 꺼려지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이미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에 영화를 개봉시켜봤자 관객을 못 모을 것이다. 물론 컨템포러리가 아닌, 고전에 가까운 영화들도 있다. 마틴 스코세지 감독의 영화는 어떤 시대에 만든 것을 틀어도 상관 없다. 아니, 상관이 있는 것 같긴 하다. 그의 영화도 시대를 따라 변화하고 있고, 오히려 컨템포러리임을 증명하는 것 같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가 아무리 고전 클래식이라고 해도, 현재 그 영화를 상영하면 사람들이 환호할 지 모르겠다. 영화는 컨템포러리가 맞다. 그래서 그게 왜 중요하냐고? 시대성을 반영하는 예술작품을 나의, 나와 가까운 사람의, 내가 살고있는 나라의 것이 아니면 그게 정작 나한테는 컨템포러리가 아니니까! 예를 들어보자면, 현재 미국에서 엄청나게 많이 제작되고 있는 아트하우스 영화, 영화제 수상작들이 젠더이슈를 다룬다. 과연 이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컨템포러리일까? 우리나라는 아직 커밍아웃을 하기도 곤란한 사회다. 젠더 이슈는 여전히 페미니즘에 갇혀있다. 미국은 젠더 이슈가 페미니즘에서 성소수자로 넘어간 지 오래되었고, he 나 she만 존재할 것이 아니라 모든 성 소수자에 걸맞는 대명사를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한다. they, ze, hir 등 종류도 엄청 많다. 우리에겐 모두 생소한 이야기이다. 이런 영화들이 괜히 우리나라에 개봉을 안 하는게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전혀 공감을 못할 이야기이다. 영화가 컨템포러리 이기 때문에, 한국 사람은 한국 영화에 가장 공감하기 쉽다. 언어의 차이도 크다. 똑같은 대사여도 영어로 들을때와 한국어로 들을때 뜻이 완전히 다르게 들리기도 한다. 체념한듯 Forget about it라고 대사를 하는 것과, '됐어'라고 하는 것의 차이는 너무도 심하지 않나. 문화는 또 어떤가. 장례 문화나 제사 문화 같은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니까 이해하는거지, 외국 사람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파묘]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한국사람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우리나라 영화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게 기쁘지 않나? 


난 한국영화를 사랑한다. 헐리우드 영화를 자막없이 보는 사람임에도, 할리우드 영화만 존재하는 세상따위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어를 잘하고 말고를 떠나서, 문화가 너무나 다르다. 그리고 각 나라의 영화는 각 나라의 문화에서 나오는 독특한 정취가 있다. 80년대 홍콩영화에 열광했던 것처럼, 90년대 일본영화에 열광했던 것처럼. 홍콩과 일본은 자국영화시장을 지키지 못했다. 이제 우리 차례다. 더이상 일이 없어서 영화계에서 계속 일을 해야할지 말지 고민하는 걸 떠나서, 이젠 정말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한국영화를 더이상 볼 수 없게 될수도 있다는 현실을 걱정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이런 상황에서 영진위 예산을 반토막 내놓고, 영화발전기금을 없앤다니. 미래도 희망도 없다. 지금 수순이라면 내년이 확실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한국 영화가 없어지느냐 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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