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naissance May 09. 2024

독과점의 끝

우리나라에도 반독점법은 있다. 하지만 유명무실하다. 독과점 구조 자체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독과점 구조에서 벌어지는 불공정 행위만 규제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제 적용 사례를 찾기도 힘들다. 방치하다시피 하니 거의 모든 시장이 독과점 상태다. 애초에 독점을 왜 방지하려고 했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한 시장경제는 시장이 자체적으로 기능하는 살아있는 생물같은 존재니 정부가 개입을 최소화하라는 거다. 우리 몸의 면역체계처럼 알아서 작동하니까 내비두라는 거다. 그렇다고 완전 내비두면 안 된다. 독과점은 규제하라고 했다. 한 두개의 기업이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순간 시장경제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경제는 결국 독과점으로 이어진다. 


신자유주의의 첨병 미국은 독과점을 엄히 다스린다. 기업을 쪼개기도 하고, 산업을 분리시키기도 한다. 엄하게 다스려도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오래될 수록 독과점은 늘어난다. 구글에도 애플에도 규제를 했지만 독과점은 나아지지 않는다. 시장경제는 독과점으로 이어지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독과점 규제를 안 하면 어떻게 될까? 한국을 보면 된다. 


세계에서 빵이 가장 비싼 나라는 한국이다. 빵을 한 기업이 독점했기 때문이다. 밀가루 유통세라는 계열사 몰아주기로 오너가 눈먼 돈을 버는 것을 보고도 그냥 놔두는게 한국이다. 허구헌날 독점 기업 몇개가 가격을 담합해 올려도 솜방망이 처벌만 하지 않나. 이미 가격 담합으로 천문학적인 이익을 얻었는데 그것의 1%도 안 되는 금액을 벌금으로 물리니 안 하는게 바보다. 이렇다보니 한국은 독과점이 아닌 시장을 찾기가 더 어렵다. 애석하게 영화도, 당연히, 독과점 시장이다. 


한국은 극장을 CGV, 롯데, 메가박스가 완전 독점한 시장이다. 티켓값을 담합해 올려도 아무런 규제가 없다. 극장을 소유한 기업들이 투자시장을 독점 시장으로 만들었을 때에도 아무런 규제가 없었다. 재벌이 소유한 언론은 기업의 한국영화 시장 독점이 오히려 경쟁력을 높였다고 찬양 기사를 쏟아냈다. 당장 기생충 기사를 찾아봐라. 독점 시장을 옹호하는 기사가 수천개다. 지금 한국 영화시장은 CGV와 롯데가 투자하지 않으면 시장이 없어지는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CGV와 롯데가 올해 영화에 투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아무도 이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는다. SPC가 올해 빵을 생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생각해보라. 난리가 날 일인데 영화에는 정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시장이 이 지경이 되도록 가만히 놔둔 것은 선배 영화인들이다. 콩고물이 너무 컸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영화 시장이 자본에 완전 잠식이 되도록 가만히 방치했다. 부동산 시장과 마찬가지로 욕망이 정신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서울에 집을 사면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욕망처럼, '나도 투자를 받으면' '내 영화가 스크린을 90% 점유하면' 나도 천만영화 감독, 제작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 이놈의 한탕주의가 모든 영화인을 지배해버렸다. 독과점 시장은 정부의 규제 없이 해결할 수 없다. 정부의 개입을 극도로 싫어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괜히 독과점만 규제하라고 한 게 아니다. 내가 이전 글에서 옆나라 일본처럼 유명한 감독 몇만 영화를 만드는 상황이 될 거라고 했는데, 그리고 그것은 자국영화 시장이 죽은 나라의 특징이라고 했는데, 그 예측도 긍정적인 예측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감독이, S급 배우 두 명을 캐스팅했음에도 투자가 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나라는 유명한 감독도 영화를 못 만드는 시장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도 들고 일어서지 않고, 정부는 가만히 있으며, 전체 스크린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범죄도시4에 관객은 열광하고 있다. 배우는 OTT 작품을 하며 살아남을 것이다. 제작자도 OTT 작품을 하며 살아남을 것이다. 감독도 OTT 작품을 하는 사람만 살아남을 것이다. 피해는 영화관에서 한국 영화를 보고싶어하는 관객과, 한국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신진 창작자들이 받는다.상황이 이 지경이 되어도 독과점을 탓하는 사람이 없다. 노비들은 절대 주인에게 대들지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1호선의 화난 노인이 되지 않기 위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