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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May 10. 2024

슈퍼마리오를 다 깨 본 적이 있는가

슈퍼마리오를 처음 접한건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였다. 전세계를 닌텐도가 휩쓸던 시절, 한번 꽂히면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성격의 형이 며칠을 울고 떼를 써서 드디어 집에 패미컴이 생겼다. 패미컴을 사면 슈퍼마리오를 껴줬다. 그럴 만도 한게 게임기 사달래서 게임기를 사줬더니 카트리지가 없어서 플레이를 못할 경우, 그 항의를 다 감당하기 힘들었으리라. 당연히 모든 아이들은 슈퍼마리오부터 했고, 우리집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몇판 해보지 못했다. 형이 독차지했으니까. 패미컴 게임들은 대부분 그랬다. 나는 끝까지 플레이한 게임이 없다. 세이브 기능도 없던 게임기니, 끝까지 깨려면 숙련도도 필요하고 시간도 필요하다. 형은 내가 숙련이 될 정도로 패미컴을 사용하게 놔두질 않았고, 오래 플레이할 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컴퓨터를 샀을 때도 그랬다. 부모님은 분명 같이 하라고 사주셨지만, 나는 거의 만지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스타크래프트 세대임에도 스타를 몇 판 하지도 않았고, 피씨방이 생기면서 더이상 집에서 피씨로 형과 싸울 일도 없었지만 나는 피씨방도 잘 가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돈을 벌어도 그 돈을 게임에 써본 적이 없다. 항상 철지난 게임기를 친구들이 할래? 하면서 기증한 걸 몇 번 해보다 말았을 뿐이다. 


그런 내가 게임을 할 때가 있다. 무조건 할 일이 필요하고 목표가 필요한 내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새로운 목표를 세우거나 일에 집중하지 못할 때, 그런 때에 게임을 한다. 예를 들면 겹엄금지 계약으로 각색을 한 다음 피드백을 기다리는 경우가 있겠다. 계약상 다른 일은 하지 못하고, 피드백이 오기 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새로운 목표를 잡기도 애매하고 뭘 해도 집중이 안 된다. 그럴 때 게임을 한다. 내가 살면서 가장 재밌게 했던 게임이 레드 데드 리뎀션 2이다. 각색을 기다리면서 한달간 주구장창 그 게임만 했다. 플스5가 나온 후 플스4를 친구가 나에게 기증했고, 콘솔과 함께 준 게임만 하다가 레드 데드 리뎀션이 하고 싶어졌다. 다 깨본 적은 없지만 GTA를 접한 적이 있고, 이왕 돈 주고 게임을 살 거 GTA처럼 플레이 시간이 긴 게임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당근에서 구입한 레드 데드 리뎀션2를 미션 완료율 100%가 되도록 했다. 이 미친 게임은 곁가지 요소들이 너무나 많아서 100% 미션 완료를 하려면 한달은 족히 걸린다. 그 후 그정도로 만족감을 주는 게임을 접하지 못했고, 게임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가성비 휴대용 에뮬 게임기를 발견하고, 세일을 한다기에 냅다 질렀다. 3만원으로 온갖 옛날 게임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샀는데, 막상 사놓고 아무런 게임도 하지 않았다. 어렸을때 했던 게임을 추억으로 다시 하는 용도지, 30년 전 게임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재밌게 하기는 힘들다. 파이널 판타지7가 세상을 주름잡던 시절 그 게임을 못해본게 한이 되어 파이널 판타지7을 해봤는데, 어렸을 적에 RPG게임을 하질 않아서 이 노가다를 내가 왜 해야하는지 모르겠더라. 스토리 진행을 위해서는 랜덤하게 적과 마주쳐서 전투를 진행해야 하는데, 그 전투가 너무나 지루한거다. RPG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절차겠지만, 나에겐 짜증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또 한동안 묵혀두다가 배터리가 나갈까봐 다시 켜서 무엇을 할까 하다가 슈퍼마리오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엔딩을 본 슈퍼마리오 게임은 뉴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DS밖에 없다. 2년 전에 기증받은 닌텐도 DS로 아무것도 안 하다가 해봤던 게임인데, 막상 하니까 재밌어서 다 깼다. 내가 성인이 되어서 슈퍼 마리오가 쉬워진건가 하고 찾아보니 역대 슈퍼마리오 시리즈 중에 가장 난이도가 낮다고. 그럼 그렇지. 어렸을 때 했던 그 최초의 슈퍼마리오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켰는데, 이게 어찐 된 일인지, 너무 재밌었다. 한창을 하다 보니 다 깼더라. 슈퍼마리오1은 엔딩도 없다. 그냥 끝난다. 허탈했다. 그리고 슬펐다. 8-4가 끝판이고, 두시간만 플레이하면 끝나는 게임을, 내가 어렸을때 다 깨지 못했던 거구나. 나에겐 패미컴과의 두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던 거구나. 


슈퍼마리오 시리지를 다 해보려는 생각으로 게임을 찾다가 슈퍼마리오 더 로스트 레벨즈라는 게임을 발견했다. 슈퍼마리오1과 똑같은 그래픽과 시스템인데 새로운 스테이지가 있는 게임이라니, 이런게 있는지도 몰랐다. 근데 이게 극악의 난이도다. 슈퍼마리오1을 클리어 한 사람이 플레이할 것을 상정해서 그런지, 난이도가 너무 높다. 깨지 못하는 내 자신의 모습에 혐오감을 느끼다가, 그 어려운 난이도를 뚫고 스테이지를 클리어 하면 만족도가 몇 배나 높기 때문에, 계속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나 게임 좋아하는구나. 어렸을때 마음껏 했으면 참 좋았을 것을. 불혹이 되어 이걸 하고 있네. 


패미컴과 슈퍼패미컴 용으로 나온 슈퍼마리오 시리즈를 다 깨볼 생각이다. 슈퍼마리오1, 슈퍼마리오 더 로스트 레벨즈, 슈퍼마리오3(2는 안 할 생각이다. 슈퍼마리오랑 전혀 상관 없이 캐릭터만 마리오가 나오는 게임인지라), 슈퍼마리오 월드, 슈퍼마리오 요시 아일랜드 까지로 알고 있다. 어렸을때 슈퍼패미컴은 부의 상징이었다. 있는 집 자식들만 가지고 있던 16비트 게임기! 8비트 패미컴을 하다가 16비트 슈퍼패미컴의 디자인을 봤을때의 그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어렸을때 깨지 못한, 플레이 해보지 못한 게임을 불혹이 되어서 다시 하는걸 슬프게 느끼는건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서 그렇다. 하지만 80년대생 남자 기준 슈퍼마리오를 다 깨본 적이 있는지가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의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슈퍼마리오를 다 깨 본 적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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