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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Jun 06. 2024

통증은 한 번에 한 군데 밖에 느끼지 못한다

무슨 운동을 하든 왼쪽 어깨가 아팠다. 회복력을 밑고 밀어붙이던 나이는 진작에 지났고, 운동은 계속 하고 싶으니 인지 재활을 했다. 내 몸이 불균형을 알게 되고 그것을 바로잡는 것에 집중했더니 놀랍게도 평생을 괴롭히던 어깨 통증에서 빠른 시간 내에 벗어날 수 있었다. 어깨가 좋아지는 과정에서 허리 통증이 발생하자, 어떤 인지를 잘못했기에 허리가 아픈 것인지 재활 선생님께 물어보았다. 어깨 통증이 덜해지니 다른 통증이 느껴지는 것 뿐이라고 했다. 인간은 한번에 한 군데 통증밖에 느끼지 못한단다. 


실제로 그랬다 어깨가 좋아지니 허리가 아파서 허리 재활을 했고, 허리가 나아지니 발목이 아파서 발목 재활을 했다. 운동할 때마다 왼쪽 어깨 통증이 가장 심하니까 그것만 신경이 쓰였던 것일 뿐, 몸의 불균형 때문에 일어난 통증인데 어깨만 아팠을 리가 없다. 내가 어깨 통증을 해소한 방법은 골반 스트레칭이었다. 왼쪽과 오른쪽 고관절의 유연성 차이 때문에 왼쪽 어깨가 오른쪽 어깨보다 살짝 앞으로 나와 있었다. 그러니 무언가를 들어올리거나 왼 팔로 힘을 줄때 어깨 앞 쪽에 통증이 발생하는 거다. 서 있을 때도 오른쪽에 더 무게를 두고 섰다. 이런 불균형 상태로 운동을 했으니 어깨만 안 좋아졌을 리가 없다. 어깨가 나아지자 허리 통증이 느껴졌고, 그 다음은 발목이었던 거다. 현재까지 발목이 해결되지 않아 발목이 해결되면 다음엔 어디 통증이 느껴질지 기대가 된다. 하나 해결하면 다음 스테이지가 생기는 슈퍼마리오 같다. 


최근에 지병이 돋아 간단한 수술을 했다. 일주일간 누워서 보냈다. 슈퍼마리오 시리즈 중 엔딩을 보고 싶은걸 다 봤고,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를 읽었다. 슈퍼마리오를 깨면서 느낀건 지금까지 난 그 어떤 슈퍼마리오 시리즈도 끝판왕을 깨본 적이 없다는 거였고, 백치를 읽고 나서는 작가가 정말 지독한 신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흔히 카라마조프가 그 정수라고 하는데, 난 개인적으로 백치가 더 심했다. 누워서 지낼 수 밖에 없으니 심심함을 책과 게임으로 달래다가,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수술한 것이 자랑도 아니고 남의 사소한 일상에 별 관심이 없는 나이기에 내 수술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나자는 친구의 얘기에 그냥 안 된다는 얘기는 할 수가 없어 그냥 수술 사실을 밝혔다. 친구는 심심하지 않냐며 사람들과 연락 많이 하게 되지 않냐고 물었다. 난 그 누구에게도 연락한 적이 없다. 누워서만 시간을 보내야할 때 할 일에 대한 선택지에 남과의 연락과 통화는 있지도 않았던 것이다. 지금도 섬나라에 살고 있지만, 더 도서산간지역으로 가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내가 누워있는 사실을 알게 되자 금방 끊기가 미안했는지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며 통화를 오래 했다. 심심할 나를 위한 친구의 배려였다. 막상 통화를 하자 나도 기분이 좋았다. 성대를 쓸쓰지도 10분 정도가 지나가 성대가 아파왔다. 이제 나이가 드니 성대도 쓰지 않으면 금방 지치는 구나. 친구는 문득 내가 무척이나 밝아졌다고 했다. 그런가? 


나는 우울증이 있고 매사 불만에 가득찬 사람이다. 이 브런치가 그것을 증명한다. 미래에 대한 전망한 항상 암울하고 내 현실에 대한 인식도 어둠 그 자체다. 그것을 비관하며 아무것도 안 하면 중증 환자요 히키코모리겠지만, 나는 그럼에도 끊임없이 창작활동을 하고 경제활동을 한다. 예전에 회사에 다닐 때에도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넌 왜 그냥 웃으면서 알겠습니다 하고 하면 될 일을 항상 안 될 것 같다, 힘들 것 같다 한 다음에 하냐고. 사회생활을 잘 하려면 그런 것도 고쳐야 한다고. 물론 그렇게 하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미 일주일간 집에 가지 않고 회사에서 자면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또 이틀은 밤을 새야할 일과 기한을 주면 좋은 소리가 나올 수가 있나. 나는 부정적이고 암울한 전망을 하기에 시간 내에 끝내지 못할 수도 있음을 상정해놓고 최대한 달려서 일을 끝마쳤을 뿐이다. '당연히 할 수 있습니다. 걱정마십쇼" 했다가 일을 못 끝내는 사람보다, '힘들 것 같은데요. 일단 해보겠습니다' 하고 일을 끝내는 사람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자가 사회생활엔 더 유리하다. 일을 못 끝내도 '제가 최대한 해보려고 했는데, 부족했습니다. 조그만 더 시간을 주시면 제가 확실히 마무리 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라고 웃으면서 이야기 하면 상대방도 양해를 해주고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나는 그런 유도리가 없었기에 항상 정해진 시간까지 일을 완수했고, 점점 더 무리한 일정을 받았다. 어차피 난 해내니까. 상대방도 그걸 아는 거다. 왜 이렇게 비관적이 되었는지를 따져보는건 왜 우울증이 걸렸는지 밝혀내려는 것만큼 무의미하다. 수술을 해야한다는 말에 내가 왜 이런 병에 걸렸냐고 질문하자 의사는 '운이 나쁜거다. 걸릴 사람은 걸린다'라고 답했다. 내 비관적인 성격도 마찬가지다. 


통증은 한 번에 한 군데 밖에 느끼지 못하는 것에 마음의 통증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수술 후 통증이 심할 때 나는 이 고통이 빨리 지나가라는 것만 생각했다. 어깨, 허리, 발목 통증을 느끼지 못했던 것처럼 우울감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니 친구가 전화를 했을때 내가 밝다고 느꼈던 것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운동은 못해도 일상생활은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다시금 나는 무척이나 어두운 사람이 됐다. 고강도 운동으로 정신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사람이 운동을 못하니 전보다 더 우울해진 느낌이다. 이번 수술 경험을 통해 두가지를 깨달았다. 노화나 중병에 걸려 병원에 누워서만 지내야 하는 상황이 왔을때 시각만 괜찮다면 난 꽤나 오래 버틸 수 있겠다는 점. 몸이 아프면 오히려 삶에 대한 의지가 생기고 마음은 더 밝아지는 점. 그렇다고 마음의 평화를 위해 크게 몸이 아프길 바라는건 아니지만 이 경험을 계기로 마음의 고통을 다스리는 새로운 접근 방법에 대해 고민해봐야겠다. 고행 수련을 왜 하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그들이 고행 수련을 선택하기 전에 얼마나 큰 마음의 고통을 가지고 있었을지 감히 상상도 못 하겠다. 인간은 겪어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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