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적이다. 혼자 있는걸 좋아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사회생활 가면을 쓰고 어떻게든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이것도 힘들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잘 만나지 않으려 한다. '낯을 많이 가린다' 라던가 '친해지면 간도 쓸개도 빼준다'라던가 여러 말로 포장해주지만 내향적이고 내성적인건 단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관계성에 근거해 문명이 이정도까지 발전했기에, 세상 모든 일은 관계에서 비롯된다.
유인원과 인간의 지능은 생각보다 큰 차이가 없다.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발견되어 그들에게 구석기 시대가 시작된 것이 아닐까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종에서 구석기 시대가 시작이 된다면, 그들에게도 신석기 시대가 올 것이고, 인류가 거쳐왔던 발전을 그들도 거칠까 하는 중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그들을 실험체로 대하거나 인간과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대다수는 그렇게 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는데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나는 그것이 종교의 유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류가 이 정도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믿음으로 엄청난 수의 집단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종교가 없었다면 인간은 부족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금과 같은 도시문명과 국가 체제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부족은 아무리 커봤자 최소 단위의 국가 수준도 안 된다. 같은 믿음을 가졌다는 것 만으로 인간은 엄청나게 큰 모수의 집단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큰 집단을 이룬다는 것은 그만큼 강한 힘을 가진다는 것이다. 한 명은 절대 천 명을 이길 수 없다. 즉, 관계가 힘이다.
매일 새로운 관계를 찾아나서는 감독이 집에서 글만 쓰는 감독보다 성공할 확률은 천문학적으로 크다. 이는 영화감독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모든 직업이 마찬가지다. 흔히 가지고 있는 예술가에 대한 고정관념은 자기만의 세상이 거대하고 그 세상에 빠져있으며 물질적인 것보다 형이상학적인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은둔형 외톨이 이미지다. 하지만 실제로 성공한 예술가는 정확히 그 반대다. 피카소나 앤디 월홀을 생각해보라. 모차르트를 생각해보라. 그들은 '인싸' 중의 '인싸'다. 반 고흐 같은 화가 때문에 은둔형 외톨이 이미지가 강화되는데 반 고흐가 사후에 유명해졌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는 살아있을때 자신의 그림을 단 한 번도 인정받지 못했다. 그림만 잘 그리면, 글만 잘 쓰면, 음악만 잘 만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판타지에 가깝다. 사람을 만나서, 기회를 얻어야 한다.
최근 가장 잘 나가는 제작사 대표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신인감독을 잘 기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제작사였고, 따라서 참여자 중에 신인감독을 뽑는 노하우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제작사 대표는 자신이 친한 젊은 감독에게 전화해 추천해달라고 말하고, 그렇게 추천받은 감독과 일을 해서 성과를 낸 일이 많다고 대답했다. 나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대답이었다. 영화제에 가서 영화를 많이 본다도 아니고, 강연이나 강의를 나가서 학생들을 많이 만난다는 것도 아닌, 본인 '지인'에게 전화해서 '지인'을 추천 받는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신인감독을 잘 기용하는 제작사의 노하우다. 인간은 집단의 모수가 커진만큼 집단에 대한 소속감은 줄어들었다. 같은 종교를 믿는다고 해서, 같은 국가에 산다고 해서, 같은 도시에 산다고 해서 소속감을 느끼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만의 집단을 만들고, 테두리를 친 후, 그 테두리 안에 들어온 사람들과만 일 하려는 경향이 크다. 중국의 '꽌시' 문화가 마치 부정적인 것처럼 표현되는데 사실 세상 어느나라에나 이런 문화가 있다.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은 테두리 안에 들어가야 한다. 당연한 것 같지만, 내성적인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벽을 넘기 위해 클라이밍을 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당연한 것조차 외면하고 살아온 것 같다. 어차피 마지막 시나리오를 쓰고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지 않나. 잃을게 없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