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자들은 해피엔딩을 선호한다. 제작자들은 투자자 핑계를 댄다. 투자자들이 해피엔딩을 선호한다고. 투자자들은 관객 핑계를 댄다. 대중이 해피엔딩을 선호한다고.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역사와 통계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대중이 해피엔딩을 선호한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역사상 가장 오래, 무려 12년동안 세계 박스오피스 1위였던 영화가 타이타닉이다. 타이타닉은 모두 알다시피 새드엔딩이다. 그냥 새드엔딩도 아니고, 실화에 기반하여 역사상 최악의 해상사고를 낸 배의 이름을 영화 타이틀로 썼다. 관객은 이미 새드엔딩임을 알고도 타이타닉을 돈을 주고 보러갔다. 그냥 한 두명 보러간게 아니고 전세계 흥행 타이틀 1위 수준으로 보러갔다. 그 기록이 무려 12년간 깨지지 않았다. 같은 감독이 만든 아바타에 의해 기록이 깨지기 전까지 말이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비극을 좋아하게 되어있다. 셰익스피어는 희극을 잘써서가 아니라 비극을 잘 써서 최고의 작가가 되었다. 희극을 못 쓴건 아니지만, 모두가 기억하는건 그의 비극이다. 햄릿, 리어왕, 맥베스, 오셀로 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읽어보지 않았어도 모두 익숙한 이름이다. 그렇다면 그의 5대 희극은? 베니스의 상인이 가장 유명하다. 나머지 네개가 뭔지 아시는 분? '한 여름밤의 꿈' 이름을 차용한 컨텐츠가 많아서 이름이 익숙할 것이다. 나머지 세 개는 말괄걍이 길들이기, 뜻대로 하세요, 십이야 다. 생소하시죠? 아이러니 하게도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셰익스피어 작품은 4대 비극도, 5대 희극도 아닌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그리고 그 작품은 모두 알다시피, 비극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비극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비극이 연민과 공포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카타르시스는 한국어로 정화 라고 표현된다. 고통에 빠진 인물을 통해, 모든 것을 잃은 주인공의 이야기에 몰입하여 함께 슬퍼하고 나면, 자신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던 깊숙한 감정을 건드리게 되고, 분노하고 슬퍼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정화시키는 기분을 느낀다는 것이다. 즉,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영화는 새드엔딩이다 이말씀.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새드엔딩임을 알고서도 한국에서 역사상 최초로 천만명이 극장을 찾았고, 그 전까지 한국에서 흥행 1위를 하고 있던 작품은 타이타닉이 아닌 쉬리 였으며, 쉬리도 새드엔딩이다. 당장 천만영화 리스트만 봐도 새드엔딩 영화가 부지기수인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대중이 해피엔딩을 선호한단 말인가.
내가 지금까지 쓴 작품들은 모두 비극이다. 해피엔딩도 있지만, 이게 진짜 해피엔딩인가 싶게끔 썼다. 나는 비극을 사랑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내 첫 장편영화도 시나리오는 더욱 비극으로 썼지만, 엔딩을 가지고 공격을 너무 많이 받아서 어느정도 타협해서 해피엔딩으로 만들었다. 후회하고 있다. 그때도 대중은 해피엔딩을 좋아한다는 논거로 공격을 당했다. 본인이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거겠지. 대중은 핑계고. 해피엔딩, 희극은 사이다 같은 통쾌함을 주지만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비극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 그 여운은 매우 오래간다. 대중이 후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착각이요 억지다. 희곡의 탄생부터 비극이 있었다. 역사가 증명한다.
그러니 엔딩 바꾸라는 소리나, 밝은 것 좀 써보라는 말은 삼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