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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Sep 14. 2024

시작되었다.

챗지피티는 인간이 무엇인지 알까

추석 얘기가 아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현상이 시작되었다. 인류 지능의 퇴화. 그것도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퇴화.


너 티발 씨야 소리를 주구장창 듣는 사회성 떨어지는 논리 머신이다. 그나마 가까운 지인들은 이런 나를 이해해주면서 좋아해주는데, 잘 모르는 사람에겐 사회성 떨어지는 반사회성 인격장애인이다. 그러다보니 나에게 말을 거는 지인들은 기본적으로 공감을 바라는 대화 자체를 하지 않는다. 다분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대화를 하기 위해 말을 거는데, 최근 하나의 새로운 경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챗지피티한테 물어봤는데'로 시작하는 문장이다. 


우리는 흔히 논리적 대화를 하면서 레퍼런스를 든다. 책이나, 유명인의 인터뷰나, 논문을 들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논술 쓸때 정보로 들 수 있는 것에 해당하는 것들. 해당하지 않는 것들에는 부모님, 지인, 블로그 등이 있다. 인터넷 태동기에는 인터넷에서 찾은 자료가 레퍼런스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인터넷에서 봤다'라는 말에 신뢰를 갖지 않는다. '그 얘기 어디서 들었어? 인터넷에서 봤어. 야 장난하냐?' 이런 대화의 흐름 누구나 겪어봤을 것이다. 더이상 인터넷은 신뢰할만한 소스가 아니다. 그런데 '챗지피티한테 물어봤더니'가 신뢰할만한 소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맛집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식당을 말하는 AI의 말을 논문만큼이나 신뢰할 수 있는 정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AI의 발전에 가장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작가 포지션에 있는 사람으로서, AI의 발전이 두렵긴 하지만 아직 신뢰할만한 수준이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발전 속도가 무서워서 몇 개의 글을 썼지만, 그건 '속도'가 무서운 것이지 현재의 AI 수준이 무서워서 쓴 글이 아니다. 현재의 AI는 형편없다. 시놉시스를 써보라고 하면 영화감독이 꿈인 초등학생 수준의 글이 나온다. 장편 시나리오 아이템이든 뭐든 다 똑같다. 쓸 수 없는 수준의 결과물이 나온다. 그럼에도 그걸 이용해서 영상을 찍고 있는 업계는 퀄리티가 상관 없는 곳이다. 광고 업계나, OTT 같은. 결과물에 대한 책임이 비교적 적은 곳. AI를 써서 만든 영화가 나오기 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사람들은 만오천원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면, 한국어로 토론하는 것이 영어로 토론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두 언어로 토론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니 그런 질문을 받은 것이고, 토론을 잘 하는 편이라서 내 의견이 궁금했을 것이다. 나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대답했다. 한국어로 존대말을 쓰는 상황이라면 영어랑 다르지 않다고. 반말로 토론을 하면 역학관계 때문에 영어보다 어려울 수 있지만, 역학관계는 언어와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이므로 한국어도 존대말을 서로 사용한다면 다들게 없다는게 내 의견이었다. 그랬더니 상대방이 '챗지피티는 한국어로 토론하는게 더 어렵다고 한다'고 레퍼런스를 제시했다. 첫째, 그게 레퍼런스가 된다고 생각하고 얘기하는게 충격이었다. 둘째, 챗지피티가 한국 문화에 대해서 뭘 아나. 대규모언어모델이 학습한 절대적 인풋이 영어다. 따라서 챗지피티가 파악하고 있는 한국 문화는 영어로 쓰여진 한국에 대한 글일 확률이 매우 높다. 셋째, 챗지피티가 토론이 뭔지 이해한다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웃기지 않나. 챗지피티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토론이라는게 무엇인지 이해하는건 어렵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철학의 3대 명제에 가까운 질문이기 때문이다. 김치찌개와 파스타 중 뭐가 더 맛있냐는 토론을 한다고 치자. 아무도 챗지피티의 의견을 레퍼런스로 제시하지 않을 것이다. 바로 확 와닿지 않나? 그건 챗지피티가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닌거다. 근데 왜 한국 문화에 대해서는 챗지피티가 알 거라고 가정하냐는 거다. 요즘 이런 일들이 너무 잦아지고 있다. 


어떤 영화에 대해 얘기를 할때, 누군가는 그 영화를 너무 재밌게 봤는데 누군가는 쓰레기같은 영화라고 생각할 경우 우리는 토론을 한다. 이 영화가 왜 좋은지, 왜 나쁜지, 서로의 의견을 교환한다. 이건 결론을 내리고 정답을 얻고자 하는 토론이 아니다. 서로의 의견 교환이다. 인간은 이런 의견 교환을 좋아하는 존재다. 나는 이 영화가 좋은데 왜 넌 이 영화를 쓰레기 라고 하냐! 라고 흥분할 때 우리가 드는 레퍼런스는 영화평론가, 네이버나 왓챠의 평점, 영화관에서의 관객 반응 등이다. 챗지피티의 의견은 무의미하다. 챗지피티가 어떻게 영화에 대해 평가를 하나. 영화는 취향인데. 본인의 취향조차도, 단순하게 생각해서 AI의 영역이 아닌 곳조차 AI에게 의지를 하게 된다면, 인간의 지능은 무의미하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이런 경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최소한의 생각조차 거부하고 AI에게 의지해버리는 경향. 


시작되었다. 지능의 종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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