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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Oct 13. 2024

소재 찾기가 이리도 어려워서야

feat 표현의 자유

아침마다 글을 쓰는 것이 습관이 들어버려서, 시나리오가 끝나니 아침이 허전하다. 새로 쓸 시나리오 아이템을 빨리 찾으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자기검열이 심해져서 아이데이션이 힘들다. 작년에 실존인물을 배경으로 법정 드라마를 썼는데, 읽어본 모두가 당장 영화로 만들어도 되는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라고 극찬했지만, 실제 인물을 둘러싼 잡음 때문에 쉽사리 계약을 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자신이 없다고. 다른 제작자를 찾아 꼭 만들라는 응원과 함께. 누아르 영화의 악몽이 떠올랐다.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여성 주인공의 범죄 누아르 시나리오를 썼고, 지원하는 프로그램마다 선정되어 수십명의 제작자를 만날 기회를 줬던 시나리오다. 시나리오가 재미없다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이 문제삼은 점은 주인공이 '20대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영화의 사이즈가 100억대 블라버스터인데 여성 솔로 주인공 영화를 쓰면 어쩌냐는 거였다. 현실을 잘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쓸 수 있었던 시나리오다. 실현 가능성보다 내가 스스로 재밌는 영화에 집중하던 시절. 100억 영화는 100억 배우가 붙어야 하고, 200억 영화는 100억 배우 두명이 붙어야 만들 수 있다는 단순한 계산을 몰랐던 시절이다. 우리나라에서 100억을 투자받을 수 있는 젊은 여성 배우는 그 당시 세 명 밖에 없었고, 세 번 돌려서 거절받으면 사장될 프로젝트를 기천만원을 주고 살 제작사는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여성 주인공 시나리오를 쓰지 않는다. 


실존인물도 마찬가지다. 이미 돌아가신 분이어도 조금이라도 논란의 소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시나리오를 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논란이 없는 사람이 존재하나? 괜히 우리나라에 실존인물 소재 영화가 적은게 아니다. 내가 제작자들에게 항변할때 말했던 영화들이 남산의 부장들과 서울의 봄이다. 왜 그 영화들은 만들어지는데 내 영화는 안 되냐고. 대답은 심플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이 센 제작자가 만들고 싶어서 밀어붙인 케이스와, 아무런 힘이 없는 독립장편 감독이 만들고 싶어하는 케이스를 비교하면 안 된다고. 그래서 내가 상업장편을 성공시키고 나면 이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을거라고 대다수의 제작자가 말했다. '첫 영화는 상업적인거 만들고, 이건 아껴뒀다가 나중에 성공하면 두번째 영화로 만들어'. 이 똑같은 얘기를 무수한 사람에게 들어야 했다. 


'표현의 자유'라고 만 하면 다들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그 범위를 영화, 코미디, 드라마, 예능 으로 한정하면 갑자기 말이 달라진다. 도덕적 엄숙주의가 사회에 팽배하고 자신도 그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표현의 자유는 중시하지만 그 소재는 개그에 활용하면 안 되지', '표현의 자유는 중시하지만 그런 영화는 만들면 안 되지' 라는 서로 모순되는 문장을 아주 자연스럽게 붙여서 사용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스스로 돌아보시라. 과연 본인은 '표현의 자유'에 더 가치를 두는지, '도덕적 엄숙주의'에 더 가치를 두는지. 아주 간단한 질문을 드리겠다. 조두순 을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게 뭐 어떻냐는 느낌이 먼저 들면 표현의 자유에 더 가치를 두는 분일테고, 그건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 아니냐는 생각이 들면 도덕적 엄숙주의에 더 가까운 분일테다. 어느 쪽이 더 옳다고 가치판단을 하자는 건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한다고 하면서 전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이중적인 행태를 지적하는 것이다. 


나는 표현의 자유에 큰 가치를 두고 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그렇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에 큰 가치를 둘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적어도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었다. 그들도 스스로의 모순을 눈치채지 못했다. 피해자를 생각해야 한다면서 실제 강간 사건이나 살인을 소재로 쓰면 안 된다고 하면서도, '살인의 추억'과 '조디악'은 찬양하는 모습이라던가. 두 영화는 실제 사건을 영화화 했다. 그럼 또 이런 말을 한다. 절제된 표현으로 2차 가해를 최소화했다. 그걸 당신들이 어떻게 아나. 최소화 되었는지 아닌지. 그럼 그걸 판단하는 사람은 누군가. 절대 심판자가 존재하나? 최소화 하면 되는거면 내가 쓰는 이 소재도 그렇게 찍으면 되는 거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나는 소수라서 소재 찾기가 힘들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이 다수인 나라는 어떻게 다르냐면, 그 최전방에 있는 미국은 9.11 테러도 코미디 소재로 쓴다. 현대에 일어난 사건 중 미국인들에게 가장 큰 집단 트라우마를 일으킨 참사다. 우리나라로 치면 세월호다. 우리나라 개그맨이 세월호를 코미디 소재로 쓴다고 가정해보자. 아마 그 사람은 개그맨은 커녕, 죽을때까지 그 어떤 직업도 갖기 힘들 것이다. 이민 가야 한다. 독실한 프로테스탄트 국가이면서도 교회의 비리나 성직자의 아동 성폭행에 대한 영화를 아무렇지 않게 찍어내는 나라다. 미국 문화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맥도날드 설립자를 악마에 가깝게 그린 영화도 제작되고 상도 받는 나라다. 표현의 자유를 워낙 중시하다보니 대선 토론에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질문이 반드시 들어간다. 우리나라에서 대선후보에게 대한민국 건국일과 5.18에 대한 견해를 물어보는 것과 비슷한 선상에 표현의 자유가 놓인다. 나는 우리나라의 그 어떤 토론에서도 질문에 표현의 자유가 들어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 결과, 미국은 문화 컨텐츠 분야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매일 섹스를 하자는 가사, 나의 항문을 빨아달라는 가사가 담긴 노래가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고 해당 노래에 아동이 춤을 추는 모습이 전국민이 보는 시간대의 토크쇼에 나오는 나라다. 왜 우리나라는 저런거 못 만드냐 라고 묻기 전에 자신은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더 이해가 안 가는 건, 문화 사대주의가 표현의 자유에도 발생한다는 거다. 똑같은 소재여도 미국 영화면, 미드면, 미국 코미디면 괜찮지만 우리나라는 안 된다는 자세다. 이건 문화 사대주의 말고는 설명이 안 되는 현상이다. 왜 '미국'은 되는데 '우리나라'는 안 되나. 미국인은 삼성에 취직 되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안 된다고 생각해보자. 아마 광화문이 불타오를 것이다. 문화에만 다른 잣대를 들이대면 안 된다. [오펜하이머] 재밌게 보셨습니까? 오펜하이머 같은 영화 우리나라는 왜 못 만드냐고 생각하십니까? 오펜하이머는 우리나라에서 절대 만들어 질 수가 없다. 그는 공산주의자로 의심받은 것을 넘어 소련의 스파이로 의심받아 과학계에서 퇴출되었던 인물이다. 만약 그런 인물을 우리나라에서 시나리오를 쓴다면, 이미 계약부터 실패할 것이다. 빨갱이! 공산주의! 이미 끝났다. 독립운동의 구국의 영웅도 공산주의 전력을 문제삼아 흉상을 빼네마네 하는 나라 아닌가. 여성 편력은 또 어떤가? 유뷰녀를 임신시키고 그렇게 새로 한 결혼 이후에도 끊임없이 바람을 피웠던 인물이다. 총 세 건의 살인미수 사건은 또 어떤가? 이런 인물에 대해 시나리오를 쓰면 과연 우리나라에서 팔릴 수 있을까? 단언코 말하는데 절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컨텐츠가 전세계의 인정을 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표현의 자유는 오히려 축소되는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표현의 자유는 수입 안 되고 PC만 수입되었다. 도대체 다음 시나리오를 뭘 써야할 지 모르겠다. 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 돼. 그래서 무난한거 쓰면 많이 봤던 소재다 어떻다, 특별한걸 모르겠다고 제작자가 하겠지. 관객들은 우리나라 영화 맨날 다 똑같다고 얘기하고. 


내가 보고 싶은 영화, 내가 재밌어서 쓰는 시나리오를 쓰던 시절은 끝났다. 

그럼, 나는 무엇을 써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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