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미디어를 하지 않지만, 독립 장편 홍보를 위해 만들어 놓은 인스타그램 계정은 있다. 2020년에 개봉하였고, 배급사가 홍보대행사도 고용했지만, 예산 때문인지 당시는 인스타그램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인지 인스타그램 마케팅을 전혀 하지 않았다. 지금은 너무나 흔해진 인스타그램 광고도 하지 않던 시절이다. 그래서 내가 만들었다. 내 영화에 출연해준 배우들에게 고마운 마음에 새로운 활동을 할 때마다 인스타에 올려주곤 한다. 그러다 어떤 영상을 접하게 된다. Chris Williamson이라는 사람의 팟캐스트 영상.
영상은 쇼츠였다. 인스타는 릴스라고 하던가. 여튼 아주 짧은 영상이었는데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을 짧게 요약한 것이었다. 해당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돈이나 지위가 상관없다면 무슨 일을 할 것인가?
타인의 의견이 두렵지 않다면 무슨 일을 할 것인가?
무엇이 실제로 나를 행복하게하는가?
어떤 종류의 성공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성공에 대한 나의 정의는 무엇인가?
돈이 아니라면 성공에 대한 나의 정의는 무엇인가?
돈과 팔로워를 빼면 성공에 대한 나의 정의는 무엇인가?
내가 회피하고 있는것은 무엇인가?
내가 피하려는 감정은 무엇인가?
내가 가장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끼는것은 무엇인가?
몇 가지 질문은 중복되기도 하는데, 아주 짧은 영상이 내게 무한한 공상을 열어주었다. 남보다 자기 객관화에 힘쓰고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지만, 내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몇가지 있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이 질문들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내가 가장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회사를 그만두고 2년동안 엄청나게 고민했다. 내가 가장 만족할만한 커리어를 하나 골라서 그것에 올인해보자는 생각이었다. 당시 나는 서른살 밖에 되지 않았고, 아예 새로운 산업에 신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은 나이었다. 모든 것을 열어두고 고민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내 만족감을 기준으로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할때 행복한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그래서 물질적 풍요로움은 제외됐다. 내가 소비로 행복을 느끼는 정도가 남들에 비해 작았기 때문이다. 허영심은 당연히 있지만 그걸 충족하기 위해 인생을 바칠 정도는 아니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 타면서 남에게 대우받고 뻐기는게 당연히 나에게도 즐거움이겠지만, 그러기 위해 인생을 갈아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 하고 말지'라는 답이 나온다. 나는 내가 만든 무언가를 통해서 인정받는 것을 좋아한다. 그게 춤이든, 운동이든, 작품이든. 그 중에서도 '너만 짤 수 있는 안무'라던가, '너만 할 수 있는 움직임'같은 개성에 대한 칭찬을 가장 좋아한다. '나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세상에 공표하는 직업을 가져야 겠다고 생각했고,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그래서 '남'을 빼고 성공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포칼립스에 혼자만 살아남아 살아가게 되면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생각했다. 이제 영화라는 커리어를 끝내려는 시점에, 저 질문들이 그렇게 의미없지 않음을 깨달았다. 내가 회피하려는 감정은 창피함이고, 성공의 기준은 사람들의 인정이고, 내가 가진 수치심과 죄책감은 내가 가진 철학과 반대되는 행동을 해왔던 과거이다. 나의 모든 답에는 '남'이 포함되어 있다. 돈이 상관없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해본 적이 있지만, '지위'가 상관없을때 무슨 일을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춤을 추지 않을까 싶다. 이 나이에 춤을 춰서 얼마나 갈 지는 모르겠지만, 돈과 지위가 상관없다면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그림이 될 수도 있다. 나는 현재도 그림을 그리고 있다. 가장 어릴때, 처음으로 제출했던 미래 희망사항은 '화가'였다. 남들의 인정을 더이상 못 받는다고 가정하고, 받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나에겐 춤과 그림이 남는다. 영화 이후의 삶에 대해 더 디테일하게 고민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