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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Nov 03. 2024

지나간 것은 그리워만 해라. 후회하지 말고.

홍콩에 다녀왔다. 일찍 갔어야 할 곳인데, 너무 늦게 갔다. 중국 요리를 좋아하지도 않은 것과, 도시 여행을 좋아하지 않은 이유가 컸다. 게다가 홍콩은 메갈로 중의 메갈로시티 아닌가.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오로지 하나다. 영화. 나는 8-90년대 홍콩영화의 엄청난 팬이다. 내 뿌리가 홍콩 영화다. 미대 진학을 반대한 부모님이 정해준 쓰잘데기 없는 학부 전공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회사를 다니다가 때려치고 공부를 하겠다고 영화 학교 대학원을 갔을때 동기들의 나이는 꽤 편차가 컸다. 33살에 들어갔음에도 내가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내 동년배들의 영화적 뿌리는 대부분 할리우드나 프랑스, 일본 영화였다. 20대들의 영화적 뿌리는 한국 영화였다. 한국 영화를 보고 감명을 받아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한 세대와 함께 학교를 다니게 된 것이다.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나를 특이하게 생각했다. 왜냐면 홍콩영화를 영화적 뿌리로 생각하는 사람은 나보다 한 세대 윗사람들이니까. 교수님들의 영화적 뿌리가 홍콩이었다. 나는 애늙으니 취급을 받았다. 도대체 젊고 젊은 사람이 무슨 그런 구닥다리 영화를 좋아하느냐는. 억울했다. 언제 홍콩이 이런 취급을 받게 된 것일까. 


홍콩 세대는 홍콩 영화의 위대함에 한 치의 의문도 없지만, 아래 세대에게 홍콩 영화는 그저 지나간 유행처럼 취급된다. 단지 오래되어서가 아니다. 후세대에서 누벨바그로 칭송되기도 하고, 하나의 사조로 영화의 역사 취급을 받는 영화들이 얼마나 많나. 홍콩 영화를 그런 사조로 보지 않고 유행으로 치부하는건 명백한 무시다. 영웅본색의 캐릭터들이 다들 과장되어 있다거나, 지나치게 슬로우 모션이 많이 나온 다거나, 지나치게 배경음이 웅장하다거나, 모두 아무렇지 않게 영화를 깠다. 왕가위만 예외였는데 아마도 그가 칸에 갔기 때문이리라.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다들 비웃었다. 그래도 난 내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홍콩 영화는 그만큼 나에게 중요한 존재니까. 내 영화적 뿌리를 내가 어떻게 바꾸나. 나는 오히려 홍콩 누아르 장르의 단편 영화를 만들고, 장편을 만들 때에도 직접적인 오마주를 넣었다. 모두가 비웃는 오우삼을 향한 열렬한 오마주를 말이다. 모두가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욕해도 상관없었다. 


그만큼 홍콩 영화를 좋아하는데 나는 홍콩을 가지 않고 있었다. 일이 없으니 이 기회에 가보자는 생각으로 홍콩에 갔고, 실망만 가득 안고 돌아왔다. 인구밀도가 너무 높아 한 평의 땅만 있어도 건물을 올리는 홍콩이 영화적 사료들을 가만둘 리가 없지 않나. 모든 것이 바뀌어버린 홍콩에서 내가 사랑하는 홍콩을 찾기 너무 힘들었다. 낭만은 없는 대신 사람은 많고, 건물은 미친듯이 높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내가 도시로 여행을 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서울에 살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메갈로시티에 살면서 이 도시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데 다른 메갈로시티에 가서 무슨 감흥을 얻겠나. 똑같은 갑갑함을 느끼겠지. 모든 것이 바뀌어버린 홍콩에서 과거의 향수를 찾으며 그래도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건 과거에 대한 내 삶의 태도에 대해서다. 


영화계가 이 정도로 안 좋아질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모든 거이 무너져 갈때에도, 모든 사람들은 영화계의 반등을 믿었다. 그렇게 쉽게 무너질 생태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각색을 하며 조금씩 커리어를 쌓아갈때 좋은 제의들이 있었다. 드라마 제작사 계약 제의라던가, 지금은 너무나 높이 올라가버린 어떤 영상 프로덕션에 입사 제의라던가. 나는 영화를 하겠다는 옹고집을 꺾지 못하고 그 제의들을 거절했다. 그 때가 2년 전이다. 모두가 영화계가 반등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모두가 놀고 있다. 들어가는 영화가 없다. 들어가는 영화가 없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기획개발조차 멈춰버렸다는 거다. R&D 예산을 줄이면 연구 인력이 한국을 떠나 허리가 끊길 거라고 걱정하듯이, 기획개발이 끊기면 사실 시장이 없어지는 거나 다름이 없다. 이미 그 현상은 극장에 나타나고 있다. 개봉할 영화가 없다. 2주에 한편씩 새로운 한국영화가 개봉하던 시절, 경쟁이 심해져 일주일에 한편씩 개봉하기 시작하면서 출혈경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였는데, 지금은 다음 개봉 영화가 언제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당연히 일은 없고, 그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그래서 그때의 선택을 후회한다. 그 제의를 받을 걸, 그 회사를 들어갈 걸 하면서. 홍콩이 내게 알려준 것은,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것이다. 


홍콩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호텔에서 티비를 노트북에 연결시켜 홍콩 영화를 본 것이다. 홍콩에서 홍콩 영화를 보는 기분이 남달랐다. 그래. 내가 좋아하는 홍콩은 저기 영화에 나오는 과거의 홍콩이구나. 지금은 그 어디에도 없구나. 지나간 것은 다시 오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건 그리워하는 것 뿐이다. 후회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땐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그래서 그런 선택을 했으며, 그 결과값이 지금이다. 지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과거의 선택을 복기하고 후회하는 건 미련한 짓이다. 나는 다음날 홍콩 영화 촬영지를 찾으러 다니지 않았다. 현재의 홍콩을 보다가 서울로 돌아왔다. 나는 현재를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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