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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Nov 12. 2024

영화는 없어지지 않는다. 한국 영화도. 다만...

영화 투자가 풀릴거라는 기대가 가득했던 것이 2023년 겨울이었다. 2024년에 극장에 개봉할 영화가 없으니 더이상 투자를 미루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극장에 한국영화가 걸리지 않으면 극장 수익이 급감할 것이고, 극장을 소유한 우리나라 투배사들이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는 기대였다.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극장이 빌 것을 알고도 투배사들은 지갑을 열지 않았다. 2024년의 극장은 그렇게 텅텅 비게 되었다. 


2025년의 영화계 상황을 예측하는 사람중에 긍정적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코로나가 발발했을 때에도 내가 만났던 영화관계자들은 모두 긍정적인 예측을 했다. 한국 영화시장이 그렇게 한 순간에 망할 만큼 작은 시장이 아니고, 시스템이 공고하게 갖춰졌으며, 경쟁력있는 영화인력이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렇게 긍정적이던 분들이 올해를 기점으로 요이땅 하듯이 모두 전망을 바꿨다. 영화계가 망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지만, 영화시장이 전처럼 회복될거라 기대하는 사람은 없는 듯 하다. 


영화는 계속 될 것이다. 다만 그 모습이 예전과는 다를 것이다. 공고하던 미국의 2차 시장, 즉 DVD 시장도 OTT의 등장으로 무너졌다. 그토록 부러워하던 2차 시장, 우린 한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그 시장이 무너진 것이다. 미국은 공고한 2차 시장 덕에 화수분 야구가 가능했다. 극장 개봉이 아닌 2차 시장을 노리는 중소 제작사들이 신인 감독과 신인 배우들을 기용해 만든 저예산 영화들이 수도 없이 만들어지는 시장. 신인 드래프트 시장이 넘쳐난다고 보면 된다. 그 중에 눈에 띄는 이들을 골라서 1군으로 올린다. 그렇게 미국 영화시장은 유수한 인력으로 넘쳐났다. 이 시스템이 사라진 미국 영화는 어떻게 되려나. 동시녹음 기술, 텔레비젼, 홈씨어터, 프로젝터의 등장도 영화계의 아성에 1미리의 흠집도 내지 못했는데, 영화계가 그토록 걱정했던 일이 OTT때문에 벌어질지 누가 알았겠는가. 중소제작사가 하던 일을 OTT가 경쟁적으로 무수한 자본을 풀며 영화를 만들던 시기도 끝났다. 넷플릭스가 OTT 시장의 승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경쟁이 끝난 넷플릭스는 더이상 컨텐츠를 많이 만들지 않는다. 시장경제의 법칙대로 흘러가고 있다. 


미국도 텐트폴,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이 줄어들었다. 예전만큼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줄어든 수준이 아니라 없어졌다고 봐야한다. 매우 영향력 있는 감독과, 매우 영향력 있는 배우가 출현하는 영화에만 큰 자본이 투입될 것이다. 톰 크루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같은 배우가 등장하는 영화. 크리스토퍼 놀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 봉준호, 박찬욱, 나홍진 감독이 연출하고 황정민, 송강호, 정우성, 이정재 배우가 출현하는 영화. 그 외에는 매우 작은 규모의 영화만 만들어질 테다. 현재 롯데시네마가 밀어주고 있는 청설 같은 영화 사이즈. 이전의 한국시장이었다면 절대 밀어주지 않았을 영화 사이즈를 롯데시네마가 밀고 있다. 굉장히 상징적인 장면이다. 


영화 시장이 망했다고 치부되는 홍콩, 일본, 독일도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영화를 제작한다. 이름있는 감독과 배우의 영화들. 영화계가 망해도 영향력 있는 이들의 생명력이 유지될 때까지는 영화가 제작된다. 양조위와 유덕화가 은퇴한다면 과연 홍콩영화가 만들어질까 싶다. 우리나라는 30억짜리 영화만 만들어질 공산이 크다. 실패해도 크게 타격이 없는 사이즈. 문제는 30억짜리 영화에 10억 개런티 배우를 붙여오라고 투배사가 요구하는 거다. 그렇다면 20억으로 영화를 찍어야 한다. 10회 촬영도 간당간당한 액수이고, 따라서 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영화를 찍을 수 밖에 없다. '잠' 같은 영화. 내년 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는 계속 그렇게 될 공산이 크다. 벤처투자사도 영화계에서 발을 뺐다. 제작비를 오롯이 투배사가 투자해야 하고, 투배사의 재무 담당자들은 절대 큰 돈을 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창작자들은 선택을 해야한다.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만 만들고 살 것이냐. 그런 영화를 하기 위해 영화업을 선택한 것이냐. 대학살의 신, 베리드, 맨 프롬 어스 같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영화감독을 꿈꿨을까.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면 애초에 영화가 아니라 연극 극작가를 꿈꾸지 않았을까. 나는 그런 영화들만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영화감독 일을 계속 할 것인가? 언젠가는 대형 영화를 할 수 있을거라는 판타지 없이 지금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참을 수 있나? 


나를 포함한 모든 영화인들은 내년 계획을 세우면서 이 점을 고려해야 한다. 참으로 암울한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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