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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6시간전

현대인들은 모두 도망치고 있는 거였구나

결혼을 하고 애를 낳는 이유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선진국일수록, 부유한 국가일수록 우울증을 앓는 국민들이 많다는 통계가 있었다. 복지가 잘 된 국가일수록 그런 성향이 강하다는 분석을 보면서 복지라고 제대로 부를만한 정책이 없는 나라에서 그딴 얘기를 하는건 더 하지 말라는 소리냐 하면서 반발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제와서 갑자기 그 통계가 떠오른건 내가 나이가 들어서이고, 부유해져서다. 


가족과 척지고 장편영화를 준비부터 완성까지 오롯이 혼자서 해냈다. 직장을 다니며 모아둔 돈은 진작에 다 썼고, 기획작가와 알바를 병행하며 돈을 버는 족족 영화 후반작업비와 생활비로 썼다. 대학시절 이후로 통장 잔고가 100만원으로 떨어진건 처음이었다. 영화는 완성되었지만 여전히 돈은 없었다. 영화는 코로나때 개봉했고, 첫 각색일을 맡기까지 1년 넘게 걸렸다. 당장 먹고살 것을 고민하면서 매일매일 살아내다가 각색 일을 맡고 나서야 숨통이 트였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가족과 화해했다. 척진 기간이 길어져서 자연스럽게 서로를 보듬게 됐는지, 내가 자금의 여유가 생기자 마음에도 여유가 생겨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었다. 그렇게 아파트로 오게 되었고, 또 한 번의 각색을 하면서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또다시 일이 없어졌고, 나는 운동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영화에 쏟아야 할 에너지를 운동에 쏟기 시작했고 선수처럼 트레이닝을 했다. 간간히 영화일이 생길때마다 조금씩 쉬었을 뿐, 또 일이 없어지면 운동만 했다. 그러다 몸이 고장났고, 운동을 못하게 되자 미친듯이 우울해졌다. 우울증을 가진 사람은 알겠지만 싸이클이 있다. 싸인 코싸인 그래프처럼 등락을 반복하는데 현재 나는 그래프가 바닥에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울하다. 그래프가 바닥에 갔을 때와 다른 종류의 우울이다. 끊임없이 자기자신을 비난하고 세상의 덧없음을 느끼며 하직하고 싶은 그런 우울감이 아니라, 세상이 참 재미없게 느껴지는 무료함에 가깝다. 그래서 깨달았다. 나는 운동으로 도망치고 있었다는 것을. 이 나이가 드니 사람은 집중할 무언가가 필요함을 깨닫는다. 그렇지 않으면 삶이 너무 무료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 답게 내나이 또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살펴보았다. 역시나 무언가에 집중하는 패턴이 눈에 띄었다. 일에 집중하는 사람이 가장 많다. 회사를 다니든 사업을 하든 자기 일에 미친듯이 매진하는 사람들이 그런 부류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별다른 취미가 없이 오롯이 일만 한다는 것이다. 일을 미친듯이 하지 않는 사람은 취미를 미친듯이 한다. 가장 많은 건 운동이다. 누군가는 골프에, 누군가는 테니스에, 누군가는 클라이밍에, 누군가는 크로스핏에 꽂혀서 미친듯이 운동을 한다. 다음 부류는 육아다. 애를 키우면 정신이 없어서 내 인생이 없어지는 것 같다고 표현하지 않나. 그걸 다르게 표현하면 집중할 거리를 육아로 정한거로 볼 수 있다. 그들의 모든 것은 육아로 집중된다. 카톡 프로필도, 인스타도 모두 애 사진 뿐이다. 골프에 미친 사람은 골프 사진만 올리듯, 육아에 집중하기로 한 사람들은 애 사진만 올린다. 모두가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 집중할게 없으면 무료하니까. 그게 고통스러우니까. 


무한한 시간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은 행복할까? 이 질문은 내가 자주 하는 돈 질문과 사실상 동일하다. 조만장자가 되면 행복할 것 같냐는 질문. 돈을 좇는 사람들에게 1조가 생기면 뭘 하고 싶냐고 물으면 대부분 여행을 다닐거라고 대답한다. 40년을 살면서 주변에 돈을 더 벌어야 한다는 사람들에게 항상 했던 질문이기 때문에 표본은 생각보다 크다. 백이면 백 여행을 간다고 한다. 그럼 나는 말한다. 이재용은 왜 여행을 안 다니는 것 같냐고. 정의선은 왜 여행을 안 다니고 매일 아침 남들과 똑같이 출근하는 것 같냐고. 젊음이 훨씬 오래가고 에너지가 줄지 않는다면 여행을 다니고 새로운 액티비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만 마흔만 되어도 여행이 힘들고 새로운 액티비티를 안 하게 된다. 노화와 더불어 내 무료한 시간을 보낼 다른것이 필요하게 된다. 우리가 아는 조만장자들이 회사에 출근하는 이유다. 여행도 못하고 새로운 액티비티도 못하면 무료함을 어떻게 견딜거냐. 우리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나라는 존재가 어떤 생명체인지 하루종일 집중해서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 성찰하는 것을 즐길 사람이 있을까? 그게 싫어서 다른 것을 좇는 것일테다. 


결혼을 하고 애를 낳지 않으면 늙어서 후회한다는 말을 벌써 이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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