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naissance Feb 02. 2024

재개발의 목적

재개발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단연 아파트다. 돈인가. 욕망인가. 다 똑같은 말인가. 


날씨가 좀 풀려서 동네 산책을 다시 시작했다. 나는 빌라촌이나 빌라 구역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각양각색의 집이 어떻게 지어져있는지 보면서 어떤 사람들이 이 동네에서 살아가고 있을지 상상해보곤 한다. 동네 사람들의 동선으로 장을 어디서 봐야 하는지,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거리를 재보기도 한다. 오래된 다세대 구역을 돌아다니면 거의 90% 확률로 재개발 관련 플래카드나 전단지를 볼 수 있다. 재개발을 해야한다는 입장의 사람들이 붙인 것과, 반대하는 사람이 붙인 것의 온도차는 극명하다. 하지만 그 내용이 절대 '내가 사는 곳을 뺏어가지 마라'의 범주가 아니다. 항상 내용은 '돈'이다. 아파트를 분양권을 얻으면 몇 배의 이익을 얻을 수 있을거다, 아파트를 지어봤자 분양권을 얻지 못할 거다, 상가 분양권으로 퉁치려고 할 거다 등등. 다세대 건물을 통채로 가진 사람은 분양권을 얻겠지만, 한 층만 가진 사람이나 한 세대만 가진 사람들은 분양권을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첨예하게 대립한다. 전세나 월세를 들어 사는 사람들은 무어라 하는 말이 없다. 우리나라는 재개발을 할 때 세입자들의 권리따위 봐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게 있어? 라고 생각하는 당신은 진정한 코리안. 


재개발은 왜 반드시 아파트의 형태로 이루어져야 할까. 특색있는 지역들이 재개발되어 아파트가 들어서고 개성을 잃어버린 경우를 한 두번 봤나. 아파트가 들어서면 그냥 아파트 단지가 되는 거다. 특색따위 없다. 동네의 개성을 죽이는 일이지만 언제나 재개발은 아파트로만 이루어진다.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이기 때문일 거다. 아파트만 지으면 무조건 수익이 나니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부동산 불패신화. 드디어 그 신화가 꺼져가는 것 같지만, 오래된 빌라촌엔 여전히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는 주장이 팽배하다. 


부동산에는 1,2,3종 일반주거구역이 있고 준주거구역, 중심상업지역, 일반상업지역, 근린상업지역 등 구역이 세밀하게 나누어져있다. 각 지역별로 용적률과 건페율이 다르고 적용받는 법도 다르다. 그래서 상업지역에 아파트를 지으면 베란다에서 손이 닿을 거리에 또다른 건물이 올라갈 수 있다. 고도제한도 구역마다 다르고, 문화재나 공원이 있으면 고도는 극도로 제한된다. 물론 쌩까고 지어버리는 건설사가 존재하고, 건설사의 로비때문인지 지역주민의 표 때문인지 시장이 고도제한을 풀어버리기도 한다.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수 있도록 모든 행정부와 입법부가 발벗고 나서주는 경우를 우린 너무나 많이 봐왔다. 최근 산책하는 동네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예정인 곳이 있다. 그말인즉슨 아직 지정되지 않았다는 얘기고, 주변을 둘러싼 다세대 주택에는 재개발에 대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어차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 고도제한 때문에 아파트가 들어설 수 없으니 기존에 서명했던 사업동의서를 변호사를 선임해 철회하라는 내용의 벽보가 여기저기 붙어있다. 


아마 이런 일이 오래 이어져왔던 것일까. 재개발을 기다리지 않고 건물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기존 다세대주택의 주인이 터를 판 건지, 직접 건물을 짓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3-4층 짜리의 새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시장이 만들어지는 속도보다 건축 속도가 빨라서 빈 건물이 많다. 이런 데에 스튜디오를 내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미팅도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만 한다. 미친 척 하고 들어가볼까 하기엔 1년을 버틸 월세도 없다. 예전 연남동의 팬으로서, 지금 연남동이 망한 이유는 오래된 다세대 주택 내 상업지역이라는 기존의 매력을 잃고 죄다 새건물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연남동은 젠트리피케이션의 대명사가 되었다. 지금 산책을 즐기는 동네도 다세대 주택을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올리고 있다. 연남동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아파트가 들어설 수도 있었던 곳에 이런 건물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새건물이 너무 아름답다. 아파트보다 못생긴 건물이 있기는 할까. 이 지역에 영원히 아파트가 들어설 일이 없길 빈다. 시장은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것 같지만. 


그리고 재개발이라는 이름부터 바꾸자. 어차피 아파트 지을거잖아. 그럼 재개발이 아니라 아파트건설이라고 부르자. 단어의 오용이다. 나는 재개발이 노후화된 무언가가 새로운 무언가로 바뀔 수 있음을, 가능성을 내포한 단어였으면 좋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