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월나무 Oct 26. 2023

산꼭대기 위의 집 8화

방아깨비 이야기

  배수지의 드넓은 사각형 잔디밭에서 2년간 내가 제일 심취해 있던 대상은 방아깨비였다. 온갖 벌레부터 비슷하게 생긴 메뚜기도 무서워하는데, 방아깨비만은 무섭지 않았다. 엄지 마디만 한 길이부터 10cm가 넘도록 거대한 것까지, 2년간 잡은 방아깨비가 삼백 마리는 되지 않을까. 방아깨비가 잔디 속에 숨어있을 때는 방아깨비를 밟지 않도록 살살 소리를 내며 걸었다. 뛰어오른 방아깨비를 잽싸게 잡아 긴 뒷다리 두 개를 잡으면 도망가지 못했다. 나머지 다리를 손바닥이나 팔 위에 대면 까칠까칠하면서도 간질간질했다. 손을 거꾸로 뒤집으면 마디마디 길고 통통한 배가 숨 쉬며 움직였다.


  최대한 조심히 다루었어도 방아깨비에게 미안한 상황은 많았다. 빠르게 한쪽 뒷다리를 잡았는데 방아깨비가 급히 도망가느라 내가 잡고 있던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거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다리를 끊고 도망간 방아깨비의 다리 상황이 궁금해서 다시 잡다가 나머지 한쪽 뒷다리까지 떨어져 나가는 일도 있었다. 방아깨비에게는 두려움과 아픔과 재앙이었을 텐데, 열 살 소녀에겐 미안함보다 호기심이 우선이었다. 다른 곤충은 잘 잡지 못하는 내게 방아깨비 채집은 엄청난 성취감을 가져다줬다. 쉽사리 잡을 수 있던 방아깨비는 수가 점점 줄어 2년쯤 뒤 이사를 앞두고는 좀처럼 잡기 어렵게 되었다.


  여름날 오후, 길이가 12cm는 되는 초대형 방아깨비를 잡는 데 성공했다. 엄청나게 큰 방아깨비가 신기하여 요리조리 구경하며 놀다 보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었다. 저녁 먹게 들어오라는 할머니의 말씀에 늑장 부리며 마당에 좀 더 머무는 것은 우리 집에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좀 더 갖고 놀고 싶은데 지금 놓아주면 이렇게 큰 방아깨비를 다시는 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아까운 마음에 다급해졌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 방법을 찾았다. 부엌에서 양재기 하나를 가져와 바닥에 엎어놓고는 살짝 한쪽을 들어 방아깨비를 넣었다. 다행히 한 번에 성공했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내 머릿속은 방아깨비로 가득했다. 저녁을 먹고 다시 나오니 날이 살짝 어두웠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양재기를 잡았다. 방아깨비가 제발 갑자기 뛰어나오지 않기를, 혹시나 없어지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양재기를 들어 올렸다. 오 마이 갓.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방아깨비를 둘러싼 새까만 개미 떼였다. 쬐그마한 개미가 백 마리도 넘는 것 같았다. 개미만 징그러운 게 아니었다. 이미 방아깨비의 다리 몇 개가 이리저리 잘려있었다. 개미들이 방아깨비 다리마다 여럿이 붙어 양재기 바깥으로 옮기고 있었다. 몸통에도 수십 마리가 붙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도 끔찍했지만, 개미들이 몰려와 몸에 붙는데도 양재기에 갇혀 도망도 못 가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죽어갔을 방아깨비를 생각하니 더 끔찍했다. 방아깨비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으로는 어림도 소용도 없는 큰 죄책감과 후회가 몰려왔다.


  그 뒤로도 관사 잔디밭에서 방아깨비를 종종 잡긴 했지만, 마음이 이전과 같지는 않았다. 내 나이 서른아홉 살, 지난달 지인의 시골집 마당에서 방아깨비 한 마리를 잡았다. 아이들에게 방아깨비를 보여주고 놓아주고 다시 잡았다가 정말 잘 가라고 인사할 때까지, 양재기 사건이 계속 떠올랐다. 방아깨비를 좋아하면서도 아끼는 마음보다 내 호기심을 채우는 게 먼저였던 시절이 떠올라 남몰래 부끄러웠다. 그날 아이들과 방아깨비, 고추잠자리, 손톱만 한 청개구리를 잡고 귀여워하며 놀았는데, 소중히 조심조심 다루고 놓아줘야 한다고 잔소리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어린 시절의 미안함을 반복하고 싶지 않은,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철없는 실수로 참혹한 순간을 만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으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산꼭대기 위의 집 7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