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아프리카 한글학교 교사 연수회에 참석했다. 여러 나라에서 온 한글학교 교사들과 함께하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새로운 경험과 만남으로 가득한 며칠 동안 특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었다.
연수회 둘째 날, 같은 방으로 배정된 선생님과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갈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방 변경 요청이 들어왔다. 우리 한글학교 선생님이 밤에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내 방의 선생님과 자리를 바꾸자고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함께 쓰게 된 새로운 선생님과는 대화를 나눌 기회도 없이 밤을 보내게 되었다.
행사를 마치고 우간다로 돌아와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방을 함께 쓰게 되었던 선생님이 바로 ‘글로다짓기’의 최주선 코치였다는 거다.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이자 글쓰기 코치라니, 너무도 뜻밖이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그날 밤새워 이야기하자던 우리 선생님은 질문 몇 마디를 던지더니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는 점이다.
한참이 지나도 그 만남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저 지나가 버린 인연일까, 아니면 무언가의 시작일까? 우연히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던 어느 날, 친구 추천 목록에서 최주선 코치의 계정을 발견했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며 점점 더 궁금해졌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용기를 내어 메시지를 보냈고, 대화를 나누던 끝에 ‘글로다짓기’라는 글쓰기 프로그램에 대해 알게 되었다. 프로그램은 글쓰기 초보자부터 경험자까지 체계적으로 배우며 성장할 수 있도록 구성된 평생 회원제였다. 프로그램 참여를 고민하면서도 가입비가 마음에 걸렸다. 그 금액은 우리 가정 형편에서는 결코 작은 부담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글쓰기 프로그램에 투자하는 게 괜찮을까요?”
어떤 이는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길이 열릴 거라며 반대 의견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자꾸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때 남편의 지인이 집에 방문했다. 우리가 글쓰기 프로그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걸 듣고는 흔쾌히 지원해 주겠다고 하셨다. 그 순간 느꼈던 감사와 감동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예상치 못한 도움 덕분에 나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은 글쓰기를 단순히 ‘감각’에 의존하지 않고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를 제공했다. 방송작가로 일했던 경험이 있고 문예 창작을 공부한 적도 있지만, 이렇게 명확하게 글을 배우기는 처음이었다. 이전에는 내가 가진 감각으로 글을 쓰곤 했는데, 프로그램을 통해 글의 주제를 정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법, 문장 구성을 다듬는 법 등 글쓰기의 근육을 키우는 방법을 배워나갔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났을 때, 공저 참여 모집 공지가 올라왔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바로 도전했다. 공저 프로젝트는 총 10명이 각자 4개의 원고를 작성해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일상에서 글감이 되는 소재를 골라 원고를 준비하고, 1차, 2차, 3차 퇴고와 짝꿍 퇴고 과정을 거치며 글을 다듬었다. 그렇게 완성도를 높인 글은 출판 계약까지 이어졌다. 최근에는 편집 과정을 마치고 책이 출간되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언제 세상에 나올지 구체적인 일정은 알 수 없지만, 한 사람이라도 이 글을 통해 위로받고 용기를 얻는다면 그 자체로 큰 의미가 될 것 같다.
연수회에서의 짧은 만남이, 그때는 아무것도 아닌 듯 지나갔지만 결국 내 삶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다. 앞으로도 글쓰기를 통해 나와 타인의 삶을 연결하며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내 글이 작은 힘이 되길 바라며, 나는 오늘도 글 앞에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