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학원생의 취업
이야기를 함에 앞서 일본에서의 취업과정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우선 일본에서는 구직활동을 '就活(*취활)'이라고 한다. 보통 이 취활을 졸업하기 1년 반전부터 시작한다. 예를 들어 학부 취업의 경우 3학년 여름방학부터 3학년 2학기까지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기업의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일본에서 인턴십이란 한국에서처럼 입사 전에 계약직으로 일하는 개념이 아니라 기업에서 홍보 및 구직자 모집을 위해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일주일정도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취활이 끝난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인턴십에 참가한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이력서가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빠르면 3학년 2학기부터 본격적으로 회사에 이력서를 넣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 4학년 1학기가 끝나기 전에 '内定(*내정)'을 받게 된다. 내 주변에서 가장 빨랐던 경우는 4학년이 되기 전인 봄방학 때 이미 내정을 받고 취활이 끝난 친구가 있다.
우리 연구실에 석사 2학년(M2)은 총 4명이다. 석사 1학년이 6명이고, 학부 4학년이 7명인 것에 비하면 꽤 적은 숫자다. 내가 처음 연구실에 들어왔을 때 이들은 한창 취활 중이어서 학교에서 얼굴을 자주 보지도 못했고 제대로 대화를 한 적도 없었다. 그저 매주 수요일에 있는 전체 세미나 때마다 한두 명씩 얼굴을 비추어서 지나가다 마주쳤을 때 우리 연구실 선배라는 것을 기억해 내는 정도의 인지도였다. 학기 초 나와 같은 구역 청소당번이 됐을 때 자기 혼자 해도 된다고 그냥 보내준 선배가 가장 처음 얼굴을 외운 M2 선배인 듯싶다. 그러던 중 연구실에서 한 사건이 발생했다.
3월, 여전히 정식 개강을 하지 않은 시기였지만 잘해보고자 하는 의욕이 넘쳐 아침 일찍 일어나 연구실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연구실 단체메일이 하나가 날아왔다. M2 중 한 명인 G선배였다. 내용은 자신이 연구실에서 교수실로 가벽을 넘어서 들어가려다가 천장에 머리를 박고 천장에 구멍이 냈다는 내용이었다. 메일을 읽고 내 일본어가 잘못된 줄 알았다. 가벽은 거의 천장에 붙어있고 가벽과 천장 사이의 간격은 1미터가 채 안 되는 좁은 틈이었다. 가벽을 넘어서 들어갈 생각을 했다는 것이 웃기고 천장에 구멍이 뚫렸다는 것도 믿기지가 않았다. 해외 출장을 가셨던 교수님은 누군가 연구실에 있다면 부서진 천장을 찍어 보내달라는 답장을 보내셨다.
출근하자마자 교수실 천장부터 확인했다. 사람 머리 크기만큼의 큰 구멍이 나있었다. 저게 저렇게 파사삭 하고 부서지는 소재였구나 싶었다. 교수님에게 천장 사진을 찍어 보내드린 박사생과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신기하다는 얘기를 했다. 다음날 아침, 연구실에 누군가가 조용히 들어왔다. 들어와선 교수실의 천장을 살피더니 혼자 있던 나에게 교수님이 안에 계시냐고 물었다. 아직 해외출장 중이시라고 대답했다. 누군가 했더니 천장을 부순 그 G선배였다. 이렇게 두 명의 얼굴을 외우게 됐다. 그리고 몇 분 후, 분노한 교수님의 단체메일이 도착했다. 잠가진 교수실을 무단침입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이며 그에 대한 벌로 당분간 연구실에 나오지 말라는 내용이었다(사실 연구실에 출근하지 말라는 것이 어떻게 벌이 되는 것인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실 한창 입시 자료나 협력기업과의 기밀 서류등이 있었기 때문에 교수님이 이렇게까지 분노하는 게 이해가 되기도 했다.
G선배의 첫인상이 워낙 강렬했어서 그 선배에 대한 이미지는 약간 이상한 선배가 되어있었다. 신입들을 모아놓고 K상을 포함한 윗대 선배들의 연애사를 줄줄이 읊어주는 것을 보면서 더욱 이상한 이미지가 축적되었다. 뭔가 뺀질거리는 느낌이었달까. 그러나 그건 정말 G선배의 일부에 불과했다. G선배는 현 M2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신입인 나와 동기들의 눈에도 보일 정도로 지금의 2학년들은 연구실 행정은 물론이고 본인들 연구도 성실히 하지 않고 있었다. 일 학기 때는 취활 때문에 그런가 보다 했지만 취활이 끝난 지금도 여전히 전체 세미나 때나 얼굴을 비추는 것이 전부이다. 그중 한 명은 석사 1학년때 개인적인 이유를 대면서 고향에 내려가 거의 일 년을 통째로 쉬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동기들을 혼자서 열심히 끌고 가던 사람이 G선배였다고 한다.
G선배는 석사 1학년 시절 총 9번의 학회에 나갔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꼴로 학회에 나간 것이다. 지금 미국 학회 하나 준비하면서 힘든 것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일임을 알 수 있었다. M1시절에는 혼자 정말 열심히 해서 교수님의 애정을 독차지했고 교수님이 G선배만을 위한 실험실을 따로 만들어주시기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놀라운 반전이었다. 그리고 그 애정은 교수실 천장을 부순 일로 와장창 깨져버렸다. G선배 본인도 이때까지의 애정이 그 사건 하나로 없어졌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교수님이 꽤 뒤끝이 있는 모양이었다. G선배의 진짜 모습을 알고부턴 선배에 대한 이미지는 완전히 달라졌다. 혼자서 동기들을 끌고 가는 리더가 되어있었다. 단체 세미나에서 후배들의 발표에 꼼꼼히 첨삭을 해주는 것을 보면서 조금 잘생겨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몇 달 전 M2들의 내정 결과가 나왔다. 가장 좋은 회사에 들어간 선배는 놀랍게도 고향에서 1년간 쉬다 온 선배였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만 반도체 회사의 일본지사에 합격했다. 그리고 가장 열심히 하고 좋은 연구성과를 갖고 있는 G선배는 처음 들어보고 그다지 연봉이 높지 않은 회사에 합격했다. 조금 충격을 먹었다. 그러나 직장인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연구실 선배들에게 물어봐도 이는 그다지 놀랄 말한 결과는 아니라고 한다. 석사 취업에서 연구 성과는 취업과 큰 관련이 없다고 한다. 연구 성과는 석사 학위만으로 족하고, 영어점수나 다른 과외 활동으로 어필하는 것이 더욱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머리로는 납득이 갔지만 마음은 그러지 못했다. 열심히 한 사람이 좋은 곳을 가는 게 순리라고 생각하니깐 말이다.
일본에선 학부 취업을 할 때도 대학 성적표를 전혀 보지 않는다. 이런 일본 구인 시스템을 생각하면 별로 놀랄 일이 아닌 것이 조금은 납득이 간다. 그러나 그렇다면 지금 연구실에서 열심히 하고 있는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현 M1를 보면 일을 잘하고 연구를 잘하는 R군이 연구실 일과 본인 미래가 달린 취활을 힘들게 병행하고 있는 반면, 교수님이 그 한 명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틈타 누군가는 여유롭게 인턴쉽을 다녀오고 취활을 하고 있다. 연구 성과가 취활과 관련이 없다면 일을 도맡아 한 전자보다 후자가 더 취업에 유리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이는 곧 내 미래로 다가올 것이다. 취활과 연구, 이 두 가지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지금은 연구에 몰두하는 것이 좋고 교수님의 평가에 예민하기에 내가 과연 똑똑하게 중심을 잡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