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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야 Sep 28. 2023

애엄마는 롱부츠 신으면 안되나요?

패잘알이 되고 싶은 애둘맘입니다만

결혼 하고 아이를 낳고 나니 이젠 어딜가나 나의 수식어는 4살 6살을 키우는 아들둘맘이 되어버렸다. 애엄마, 아줌마, 누구 엄마가 익숙할 법도 한데 나는 어쩐지 나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렇게 글을 쓰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를 표현하기에 가장 직관적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패션이다. 그러나 옷입기에 관해서라면 최근까지도 옷은 몸에 맞기만 하면 아무거나 입으면 되는 줄 알았던 사람이었다. 어릴때는 어른들이 사주는 대로 입었고, 결혼 후에는 남편이 어쩌다 옷을 사주면 그게 예쁜 줄 알고 군소리 없이 받아들었다.


하지만 남편이 사주는 건 고맙지만 내 취향이 아닌 옷은 확실히 손이 가지 않았고 결국 입지 않는 옷은 당근마켓으로 거래되거나 복지관에 나눔해버리기 일쑤였다. 그리고 본인이 사준 옷을 함부로 싼 값에 팔았다는 이유로 남편과 엄청 싸우곤 했었다.


‘자존감과 패션의 상관관계’


그 옷이 마음에 안들면 싫다고 진작에 말하면 될 것을 나는 그 말조차 하지 못하던 사람이었다.

내 귓가에는 이런 메세지가 울려댔기 때문이다.


‘뭐든 사주는게 어디야, 남편이 나보다 센스가 더 좋으니까 남편이 골라주는게 예쁜거야, 나는 원래 옷을 못 입잖아, 내가 고르는 건 오히려 촌스러워 보일거야’


자존감이 낮은 상태에서는 자신감도 떨어지는 법이다. 특히 어떤 선택을 함에 있어서 자신의 취향, 생각 등을 명확히 표현하지 못하고 남의 선택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딱 그랬다.


가끔 외식을 하거나 배달음식을 시킬때도 한번도 내가 먹고 싶은 걸 고른 적이 없었다. 정확히는 내가 먹고 싶은 걸 말하긴 했지만 정작 시킬때는 남편의 의견이 더 강하게 반영되었다. 나는 이거 먹고 싶어라고 소심하게 말해보긴 하지만 어차피 최종적으로는 남편이 원하는 걸 먹게 되는 것이 우리의 패턴이었다.


 그만큼 나의 의견을 표현하고 나를 주장하는 것이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 굳이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에 남의 의견에 맞춰주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면 안됐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맞춰주기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언제까지나 누군가의 그림자처럼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올 봄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고 부터는 조금씩 내가 번 돈으로 옷을 사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 카드로 결제하는 것마저도 남편에게 일일히 전화를 해서 물어봤다. 이 옷이 나에게 어울릴 것인지, 내 돈으로 사도 되는 것인지 지금 생각하면 바보같이 그런 걸 뭐하러 물어봤나 싶지만 그땐 허락을 받아야 하는 줄 알았다.


그렇게 옷을 사고보니 어찌나 뿌듯하고 기분이 좋은지 아마 그때부터 패션에 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마침 대자본의 빅데이터는 나의 취향과 나의 관심사를 정확히 파악하여 인스타그램의 광고로, 유투브의 알고리즘으로 추천영상을 보여주었다.


갑자기 내 취향을 저격한 쇼핑몰 광고가 뜨고 패션꿀팁을 알려주는 유투버들이 등장하면서 나는 패션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졌다. 패알못의 아줌마지만 패잘알이 되고 싶어 열심히 공부하듯 영상을 보고 하나 둘 직접 옷을 고르고 사보기 시작했다.


급격한 나의 변화는 남편의 레이더에 걸렸고 즉각 제재가 들어왔다.


“아니 왜 자꾸 옷을 사는거야? 집도 좁은데 옷 좀 그만 사”(실제로 옷방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건 남편의 옷이지만..)


“옷 좀 그만 입어대, 맨날 패션쇼하기 안 지겹나?”


예전같았으면 이런 말에 기분 나빴을텐데 나는 명랑하게 그냥 받아치고 말았다.


“응 하나도 안 지겨운데 너무 재밌는데?”

“그리고 지금 당신 옷이랑 신발이 훨씬 더 많거든? 당신이야말로 안 입는 옷들이나 좀 정리해”


심지어는 남편의 옷장에서 지금 시즌에 딱 입기 좋은 셔츠들을 골라내 아예 내쪽 행거에 걸어두고는 “이거 안 입는거지? 내가 입을게” 하고는 외출 할 때 남편 셔츠를 종종 즐겨입기도 했다.


어이없다는 듯 보긴 했지만 있는 옷을 활용하는 것에는 남편도 좋아하는 내색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영상을 보며 패션을 알아가는 중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아이템이 있었으니 바로 ‘롱부츠’였다. 그런 건 키크고 날씬한 사람들이나 신는거라 생각했기에 일생에 롱부츠라는 것은 사본적도 신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견물생심이라 했던가. 자꾸 보다 보니 예뻐보이고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과감한 길이의 신발을 나도 한번쯤은 신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폭풍 검색에 들어갔고 마침 W컨셉 사이트에서 단독 할인하는 상품을 찾아내 3개월 할부로 결제를 하고야 말았다.


원래 129,000원 하는 상품을 6만원에 구입했기에 스스로 엄청나게 뿌듯함을 느끼며 부츠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일주일을 기다린 끝에 선물 같은 예쁜 택배상자를 받았고 반짝 반짝 빛나는 롱부츠를 신고 그 길로 출근을 했다.


출근 전 남는 시간에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보고 인스타에 대놓고 부츠 샀다고 자랑을 했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뭘 샀다고 자랑해본적도 없거니와 왠지 그러면 안된다는 생각이 은연 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좀 뻔뻔한 면이 적당하게는 있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자랑도 아무렇지 않게 해댈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이라이트는 퇴근한 남편의 반응이었다. 그는 나의 롱부츠를 보고는 아주 질색팔색을 했다.


“아니 집도 좁은데 또 이건 왜 산거야? 이런건 키 큰 사람들이나 신지 키 작은 당신한텐 안 어울려”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자꾸 이런걸 사대는거야? 당신은 아가씨가 아니야~ 애엄마가 누가 이런걸 신어?”

“이거 땀 차고 발냄새 엄청나는거 알아? 난 하여튼 진짜 싫어. 다음부터 내 눈에 거슬리는거 사기만 해봐, 가만 안 있는다”


이건 뭐 내 돈으로 샀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내가 꾸미는게 그렇게 싫은건지 왜 저렇게 질색팔색을 하는건지.. (남편의 말에 상처 안 받기로 했지만 이렇게 글로라도 푸는 게 좋을 것 같아 쓰고야 말았다)


하지만 그냥 내가 너무 예뻐지면 불안해서인걸로 혼자 결론을 내리려 한다. 당신이 아무리 그래도 난 패잘알 패피 아줌마가 되고 말거야!!


언제나 기분 좋은 택배상자
원피스에 롱부츠 안 어울리는거 같지만 어울리는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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