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pause and play

여성 아이돌이 말하는 욕망과 터부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

by 유빈

Part 1. '나'

- Inner self



욕심을 숨기라는 네 말들은 이상해

겸손한 연기 같은 건 더 이상 안 해



평소에도 르세라핌(LE SSERAFIM)의 콘셉트와 메시지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편이었다. "I'M FEARLESS"를 애너그램 하여 만든 그룹명, 욕심과 야망을 주된 메시지로 채택한 브랜딩 방향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나를 말하고 자아를 드러내는 사회의 흐름이 대중음악에 흘러 들어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이는 기존의 물결이었던 '걸크러시'와 분리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피도 눈물도 없이 복수할 대상인 '나쁜 남자', 혹은 나는 좀 다르다고 뽐내는 데에 비교 대상으로 쓸 '예쁘게 치장만 해대는 저 여자애'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이제 이야기는 오직 나 자신, 내 안의 내면으로 파고 들어간다. 아이브(IVE)가 나르시시즘에 기반을 두어 자기 자신을 노래하는 반면 르세라핌은 자신의 내면적 욕망에 대해 노래한다. 욕심 많고, 성공을 치열하게 열망하는 내면을.



Part 2. 여성과 금기

- 터부시된 욕망으로 남겨진 상징





웃어 웃어 더 인형이 되렴

덮어 덮어 다 감정 따윈 다

싫어 싫어 난 인형이 아냐

찡그린대도 그것도 나야



여성의 욕망이 금기로 연결되는 것은 고전 문학에서부터 유구하게 이어져온 알고리즘이다. 욕망을 표출한 여성 인물은 처벌을 받거나 비극적 결말을 맞이함으로써 비로소 상징적 존재가 된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끝이 죽음일 것을 알면서도 남성적 질서 안에서 자신의 지표가 가리키는 바를 실행했다. 에덴동산의 이브는 선악과를 먹었고, 프시케는 사랑하는 에로스의 얼굴을 확인하려 했으며 푸른 수염의 아내는 금지된 방의 문을 열었다.


라캉은 '욕구'와 '욕망'을 분리했다. 욕구는 생물학적이지만 욕망은 정신분석학적 차원에 위치해 있다. 르세라핌의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라는 트랙은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여성 화자를 둘러싼 금기와, 그 금기를 깨고 싶어 하는 고차원적이고 정신적인 욕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성공이라는 정상에 대한 불타는 투지와 그로 인해 발생되는 욕심을 가진 여성 화자는 그날의 이브, 프시케, 푸른 수염의 아내처럼 금기와 치열하게, 그리고 겁 없이 대치한다. 이 과정에서 인형과도 같은 예쁜 웃음은 필요가 없다. 그래서 화자는 얼굴을 찡그린다. 금기를 깨고 이 모습 또한 나라고 외친다.



Part 3. 욕망으로 이루어진 연대

- 타자화가 아닌 내면화



괜찮단다 뭐를 해도 거짓말인 걸 난 알아

괜찮겠지 뭘 해도 착한 얼굴에 네 말 잘 들을 땐

괜찮지 않아 그런 건 내 룰은 나만 정할래



걸그룹에 대한 사회적 잣대가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할 사실이다. 무례하고 모욕적인 요구와 질문에도 예쁘게 웃으며, 불쾌한 감정을 덮고 착한 얼굴을 보여야 대중에게 '예쁨 받는' 것은 안타깝지만 정작 이 노래의 화자인 르세라핌도 피해 가지 못한다. 그러나 이 노래의 메시지는 그러한 상황에 놓여 있는 이들을 화자로 설정함으로써 의미를 가진다.


여전히 겸손이 미덕이고 욕망을 드러내는 것을 건방지다고 손가락질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사회에서 많은 젊은 여성들은 정상을 열망하고 끊임없이 자신에 얽힌 내면적 열망을 드러낸다. 비단 여성뿐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젊은 사람들이 그러하다. 말 잘 듣는 고분고분함보다는 내 의사를 명확히 드러내는 것, 시종일관 착한 얼굴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필요에 따라 단호한 표정을 짓는 것은 'MZ 답다'는 말로 뭉뚱그리기보다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옳다.


르세라핌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모두 사회의 시스템 안에 들어가 있는 구성원이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동시에 삐끗하면 다수의 질타를 받을 수도 있는 위치에 있는 아이돌 르세라핌이 그들의 이름처럼 '겁 없이' 터부를 이야기하고 더 높은 위치에 다다르는 것에 대한 욕망을 원색적으로 드러낸다. 영향력 있는 인물은 마치 스피커와 같아서 이들의 메시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퍼지고 안착한다. 그들의 욕망은 결국 나의 욕망이 된다. 분명 그들은 지독하리만치 자신의 열망만 이야기하는데, 비슷한 금기와 열망의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이를 고스란히 내재화하는 것이다.


치열하고도 냉혹한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해 놓은 금기를 부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어 하는 여성들을 응원한다.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 외에도 르세라핌의 노래들이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과 젊은 세대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문득 이들의 트레일러에 적힌 김초엽 작가의 문구가 떠오른다.


혼자 하면 방황이지만 함께 하면 모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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