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리암페어 Oct 11. 2023

Ep. 1. 하나를 깊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

얕고 넓은 지식, 깊고 좁은 지식; 인생은 Trade-off 다.

나는 정말 끈기가 없는 사람 중 하나다.

나는 기타도 치고 피아노도 치고, 하모니카도 할 줄 알고, 농구도, 스쿼시도, 골프도 칠 줄 알고, 볼링도 칠 줄 알고, 게임도 할 줄 알고, 나름 할 줄 아는 것들이 많다. 그런데, 문제는 깊이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처음에는 재밌고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무슨 일이든지 실력이 더욱 향상되는 노력이 필요한 구간이 존재하고, 그 구간을 버티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취미는 많지만 실력 있게 하나를 깊이 파고들지 못하고 있다.


내가 감사하는 것은 공부는 그나마 유일하게 잘하는 것이 공부여서, 어쩌다 보니 포기하지 못하고 꾸역꾸역 억지로 해서 명문대에 진학하고 지금도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공부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던 것 같은데, 해야 했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강제성이 없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생각도 한다. 아마도 나는 잘하는 게 대체 뭘까 하는 우울의 구렁텅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기만하려고 글 썼냐'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도 계실 것이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끝까지 읽어봐 주시길 바란다.


나도 한때는 이러한 고민이 굉장히 큰 고민이었다.

공부도 사실 박사과정을 밟고는 있지만, 성향상 뭔가 깊게 파기보다는 계속 얕고 넓게 공부하려는 습성이 있다. 하나를 깊게 파기에는 끈기와 머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랄까. 그래서 박사를 하면서도 계속 걱정되고 고민했었다. 때론 이와 같은 이유로 우울감에 잠식당할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얻은 결론은 '이러한 습성 (넓얕; 넓고 얕은 지식)을 가진 사람도 있어야 하고, 깊게 하나만 파는 것을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야만 사회는 돌아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회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를 잘하는 전문가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협업이 중요한 부서에서는 두루두루 아는 엔지니어나 전문가가 당연히 필요하다. 특히 공학을 예시로 들어보면, 재료 쪽 연구자가 쓰는 언어와 전자과 쪽 연구자가 쓰는 언어는 같은 현상에 대한 것들도 서로 달라서 소통이 어렵다. 즉, 두 쪽 모두 아는 사람이 필요할 때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생각보다 이렇게 얕고 넓은 지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많이 필요하다. 부서로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부품 전문 부서에서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지만, 패키징이나 상품화 부서에서는 넓고 다양한 지식이 필요하다.


이 결론을 사회 전체로 넓혀볼까?

요즘은 정말 정보가 많은 시대다. 뭔가를 배우고자 하면 쉽게 배울 수 있고, 내 친구 말에 따르면 '의지좆망겜'으로 변했다. 의지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세상이다. 특히나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깊은 지식 하나보다는 잡다한 지식이 필요한 분야도 더욱더 많아졌다. 다르게 말하자면, 특정 삶의 지향점에 따라서는 내가 깊이 알 필요가 없어졌다. 왜냐면 내가 모르는 부분은 그쪽 전문가를 고용하면 되니까. 마음만 먹으면 아웃소싱도, 협업도 얼마든지 가능한 세상 아닌가. 전문가는 세상에 널리 퍼져있다. 오히려, 요즘은 하나의 깊은 전공 지식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융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야말로 소위말하는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나와 같이 취미는 많은데 깊이가 없다던지, 나는 도대체 뭐 하나 제대로 잘하는 게 없다던지,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글을 읽고 다시 본인을 사랑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어쩌면,

이 세상의 승리자는 이러한 '넓얕'의 애매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될 확률이 높다.


사업 구조를 만들고, 그에 필요한 인력을 고용하는 사업가, 기업의 방향성을 정해야 하는 CEO, CTO 등의 C 클래스 임원들... 이들은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결국엔 다방면에서 현상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이어야만 한다. 그러니까, 너무 낙담하지 말자. 오히려 관심 가는 대로, 다양한 지식을 흡수할 수 있는 그 열정만 잃지 말자.

다만, 그 잡다한 지식들을 어떻게 이어서, 응용해서 성공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도 뒤따라야 한다는 것은 잊지 말자. 그대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그런 성향을 가진 당신을 필요한 곳은 세상에 반드시 있다. 


추신: 살아오다 보니까, 깊게만 팔 줄 아는 사람은 넓게 보지 못하고, 넓게만 볼 줄 아는 사람은 깊게 보지 못한다. 세상에는 장점이 다른 관점에서는 단점이 될 때도 있더라. 단점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결국 장점으로 돌아올 때도 많고. 

인생은 Trade-off다. 

우리가 원하는 삶의 방향성이 진정 뭔지, 혹은 내가 잘할 수 있는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고, 그 길을 위해 필요한 성향으로 적절히 스스로를 가꾸어보자 :) 그리고 대체 불가능함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나아가자. 


나는 지금도 어제보다 나은 나를 그리며, 볼링도 치고, 골프도 치고, 스쿼시도 치고, 연구도 열심히 하고, 영어도 열심히 하며, 이젠 글도 열심히 쓴다.  



머리가 복잡할 때 걸었던, 아름다운 진주시의 금호못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