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마음 아픈 짝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우주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어쩌면 가장 당연한 자연의 순리 중 하나일 것이다. 필연적이면서도 결코 당연하지 않으며 가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의 아름다움이 이 사랑을 메우고 있다. 마치 세상의 모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고 눈에 보이는 자연이라는 하나의 그림이 담은 심상과 아울러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여기, 불행히도 축복을 받지 못한 채 외롭게 아버지를 짝사랑하는 여린 마음의 아이가 울부짖고 있다. 이름조차도 없이 흉측한 외모로 인해 홀로 은둔생활을 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감탄했던 순수함과 남을 도울 때 생기는 강렬한 희열을 모두 잃어버린 마음 여린 악마, 그는 누구인가?
18-19세기, ‘과학 혁명’이라고 불릴 정도의 거대한 근대 과학 발전이 이루어졌다. 그중 <프랑켄슈타인>이 영향을 받게 된 갈바니즘을 중요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먼저 갈바니즘이란, 간단하게 말하면, 시체에 전기 자극을 주어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당시 과학자들은 전류가 있다면 죽은 사람을 살려 낼 수 있다는 이론을 세워 연역적 탐구를 계속해나갔지만, 훗날 과학자들의 분석으로는, 전류가 근육을 자극해 수축과 이완이 반복되는 단순한 경련이었다고 한다. 실제 작 중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죽은 시체들을 이어 붙이고 꿰매 새 생명을 눈뜨게 하는 장면이 있기 때문에 갈바니즘과의 연관성이 엿보인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계몽주의와 합리주의가 서양 세계를 지배했다. 그들은 신을 과학으로 대체하며 전적으로 인간의 이성을 함양했고, 개인적인 내면의 목소리와 감정을 억압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억압에 부딪혀 개인적인 감정과 그림자, 목소리, 자유를 주장하고자 등장한 것이 바로 '낭만주의'이다.
메리 셸리는 아무리 인간이 이성적으로 과학적인 성공을 이루었다 해도, 그 산물을 감당할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간에겐 합리적인 모습과 동시에 불가해한 그림자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시체를 엮어 피조물을 만들어 내지만 그를 감당하지 못하고 감정적인 반발에 이기지 못해 상호 간의 비극을 일으킨다. 이러한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으로, 인간에겐 이성적인 정답이 정해져 있으며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맹신하는 합리주의자들을 향한 뼈 때리는 충고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그 철없는 아버지와 불쌍한 아이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희망차고 열의에 타오르는 듯한 심장을 안은 채 배를 타고 북극을 탐험하는 월턴이라는 젊은이가 있다. 외로운 탓에 친구를 간절히 원하던 참에, 그는 이 추운 북극에 몰골이 망가진 채로 돌아다니는 한 남성을 만난다.
청년은 자신이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소개하고, 곧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그런데 프랑켄슈타인은 월턴의 욕망과 희망을 발견하고 한때도 그랬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에게 충고하고자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이렇게 소설은 액자형으로 첫 장의 막을 연다.
한때 희망차고 밝은 눈을 가진 청년이었던 ‘프랑켄슈타인’. 제네바의 명문가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들과, 진실되고 책임감 있으며 다정한 부모와 부족할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내고 드디어 유학을 떠나게 된다.
그는 유학 중 몇 년에 걸쳐 한 실험에 몰두한다.
사람의 시체들을 모으고 엮어 피조물을 만드는 것이다. 글쎄, 출발은 좋았으나 실험 결과는 진짜로 살아 움직이는 피조물의 모습.
프랑켄슈타인은 흉측한 물체가 살아 움직이자 겁을 먹고 이성을 잃은 채 곧바로 도주한다. 그런데 얼마 후, 그의 형제인 윌리엄이 살해당하고 아끼는 하녀 유스틴이 누명을 써 죽음을 맞았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곧 이 살인 사건의 범죄자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으니, 이 소동이 전부 피조물이 윌리엄을 살해하면서 벌어진 것이라고.
당장이라도 찢어 죽일 기세로, 프랑켄슈타인과 피조물이 만나는데, 그는 피조물이 끔찍한 외모 때문에 외로운 은둔생활을 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며 여자친구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받는다.
“나는 당신의 아담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타락한 천사가 되어 잘못도 없이 기쁨을 박탈당하고 당신에게서 쫓겨났다. 나는 자애롭고 선했다. 불행히 나를 악마로 만들었다.”
-프랑켄슈타인, p. 132
책임감 없는 부모 밑에서 커다란 세상에 홀로 버려진 마음 여린 아이의 울부짖음이 책을 뚫고 내 심금을 울렸다. 피조물은 겉만 징그럽지 사실 착한 마음 안에서는 프랑켄슈타인을 가장 따뜻한 안식처이자 사랑이라고 여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그를 찾아와 사랑과 책임, 행복을 갈구하는 그 안타까운 모습 뒤엔 프랑켄슈타인을 향한 짝사랑이라는 외로운 그림자가 있었기 때문이니라… 그럼에도 충동적인 판단과 이기적인 사유의 연속으로 피조물을 외면한 그는 그 아름다우면서도 필연적인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
피조물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여자친구를 만들어 주는 프랑켄슈타인은 다시 충동적인 일을 벌이고야 만다. 갑자기 피조물들이 번식하는 상상에 휩싸이는 바람에 미완성 상태의 여자친구 피조물을 갈기갈기 찢어 없애 버린 것이다. 후에 찾아올 보복은 생각하지도 않는 프랑켄슈타인에게, 피조물은 잠잠히 전쟁을 선포하고 그의 주변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죽여나가기 시작한다. 친구, 약혼한 여자, 아버지까지, 그의 지인과 가족이 전부 죽고 나서야 프랑켄슈타인은 피조물처럼 똑같이 외로운 존재가 되고야 만다. 아마 피조물도 그가 세상에 홀로 남는 것을 원했을 것이니.
자멸의 끝을 달리는 프랑켄슈타인과 피조물은 북극에서까지 추격전을 벌이고, 그러던 중 프랑켄슈타인이 월턴에 의해 구조가 된 것이었다.
오랜 이야기를 들려준 프랑켄슈타인은 곧 죽음을 맞이하는데, 곧 월턴의 눈에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흉물이 비친다. 바로 프랑켄슈타인이 들려준 이야기에 나온 그 피조물이다. 그는 싸늘하게 식은 자신의 창조자의 곁으로 가 슬프게 울부짖는다. 월턴은 이젠 늦었다며 피조물을 비난하지만 피조물은 계속해서 말한다.
내가 저지른 끔찍한 짓을 하나씩 돌이켜보면, 한때 숭고하고 투명한 미와 위풍당당한 선의 비전으로 사고가 충만했던 존재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이다. 타락한 천사가 사악한 악마가 되는 법이다.
...
나는 철저히 혼자다.
프랑켄슈타인, p. 300
인간들 중에서도 사랑과 존경을 받아 마땅한 우수한 인물인 내 창조자를 불행으로 몰아넣었다.
프랑켄슈타인, p.301
몇 년 전, 이 세계가 담은 심상들이 처음 내게 열렸을 때, 여름의 명랑한 온기를 느끼고 바스락거리는 잎사귀와 지저귀는 새 소리를 들었을 때, 그리고 내게 이들이 전부였을 때는 죽기 싫어 흐느꼈을 텐데. 죽음은 이제 내게 남은 유일한 위로다.
프랑켄슈타인, p.302
이 말을 남기고 피조물은 죽음을 선언하며 바다로 뛰어내린다. 생전 이름 한번 얻어보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도 못한 채로, 피조물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고작 16년 살았지만 이렇게까지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된 글은 본 적이 없다. 피조물이 죽은 프랑켄슈타인을 향해 슬프게 뱉어내는 모든 말들을 영원히 내 마음속에 새기고 싶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창조자를 향한 피조물의 사랑을 조금 더 노골적으로 드러냈는데, 피조물의 절망스러운 울부짖음이 환청으로 들려오는듯해 코끝이 찡했다.
피조물이 처음 태어났을 때 자연과 교감하며 쿵쿵 뛰었던 심장이, 어디 있을지 모르는 먼 세상에 가서는 평온히 쉬면 좋겠다. 그의 개화도, 낙화도 모두 프랑켄슈타인에 의한 것이었다.
내가 책을 읽다가 눈물이 나다니. 평생 잊히지 않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