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에 숨겨진 마법같은 비밀
이번엔 악예(樂禮) 이야기를 해줄게. 예예는 감정이라는 손님을 맞이하는 법이었어.
“어서 와. 흙 묻은 신발인 채로도 괜찮아. 근데 여기까지야.”
하고 지켜봄이라는 덧신을 신기는 거였지. 그렇게 맞이한 손님은 예쁘게 흘려보내야 해.
“감정은 괜찮아. 하지만 예쁘게 흘려보내자.”
그 손님이 너를 흔들지 않게, 너도 그 손님을 다치게 하지 않게. 감정이 오래 머물면 너도 지치지.
너무 오래 머물면 네 마음의 방도 어지럽히거든.
슬픔이 너무 오래 머물면
네 마음을 수그리게(鬼) 한단다.
기쁨이 너무 오래 머물면
네 마음을 펼쳐지게(神) 한단다.
악예란
너무 수그러든 네 마음을 펼쳐지게 하고
너무 펼쳐진 네 마음을 수그리게 하는 것이란다.
예쁘게 흘려보낸다는 건, 감정을 억누르는 것도, 막 쏟아내는 것도 아니야. 마치 물을 딱 좋은 세기로 틀어서
컵에 담는 것처럼 말이야. 너무 세게 틀면 넘치고, 너무 약하게 틀면 마르지. 악예는 물처럼 감정을 딱 좋은 만큼 흐르게 하는 법이야.
눈물이 날 때가 있지? 그럴 땐 “울지 마!” 하며 꾹 참지 마. 하지만 바닥에 드러눕고 막 소리 지르며 울지도 마. 슬픔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잔잔한 음악을 틀어줘.
“지금은 울어도 괜찮아. 조금 울고, 편히 쉬었다 가.”
그렇게 감정을 강물처럼 부드럽게 흘려보내는 것, 그게 악예야. 그 물이 흐르지 못하고 고이면 썩어서
친구들에게 냄새를 풍기겠지 그 물이 너무 세게 흐르면 친구들 조차 젖게 만들겠지. 그렇게 매일 감정을 흘려보내다 보면 어느 날 너는 깨닫게 돼.
“어? 나 요즘은 화가 나도 조용히 말할 수 있어.”
“기쁠 땐 다른 사람도 웃게 만들 수 있어.”
“울고 싶을 땐, 노래처럼 슬퍼할 수 있어.”
그게 바로 악예가 너에게 준 힘, 중도의 크기가 자라난 거야. 그러니 기억해 줘. 감정은 다 하늘이 준 네 마음의 원석이야. 그걸 예예로 맞이하고, 악예로 흘려보내며, 조금씩 다듬다 보면 그 감정은 세상에 빛나는 보석이 된단다.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를 생각해보자. 장례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사람의 마지막 길을 정성껏 보내드리는 일이야. 그냥 “안녕” 하고 끝내지 않고, 함께 울고, 기도하고, 절하며 사랑했던 마음을 예절의 형태로 표현하는 거야. 이건 슬픔을 억누르는 것도, 흘러넘치게 두는 것도 아닌 아름답게 흘려보내는 것이란다.
상례기간에는 남은 이들의 슬픔을 다듬는 시간이란다.
상례는 남겨진 사람들이 자기 마음속의 슬픔을 천천히, 정직하게 정리하는 과정이야. 울고, 절하고, 검은 옷을 입고, 차분한 마음으로 지내는 여러 날들. 이건 슬픔을 노래처럼 천천히 흘려보내는 악예의 리듬이야. 슬픔을 덜어내는 게 아니라 천천히 흐르게 하는 거야.
그리고 사람이 떠난 지 시간이 지나도 그리움은 남아 있어. 그리움은 때로 눈물로, 때로 작은 웃음으로 돌아오지. 그때 사람들은 사진을 보고, 노래를 부르고, 편지를 쓰며 그 사람을 기억하는 자리를 만들지. 그게 추모식이야. 추모하는 날이 없다면 감정은 너무 빨리 잊혀질지도 몰라. 너무 거칠게 쏟아질 수도 있고. 그래서 우리는 정한 날, 정한 방식, 정한 마음으로 감정을 다시 꺼내어 노래처럼 불러주는 것이지.
그리움을 예쁘게 꺼내어 다시 마음에 차분히 놓는 의식이야. 장례도, 상례도, 추모도 다 같은 마음이 담겨 있어.
“슬픔은 괜찮아. 하지만 함께 아름답게 흘려보내자.”
함께 노래처럼 슬퍼하고, 함께 예처럼 절하고, 함께 기억하고 웃는 것. 그건 중용에서 말하는 아름다운 감정의 흐름, 바로 악예(樂禮)의 얼굴이란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마치 금빛이 갇힌 돌을 정성껏 갈아내는 것처럼. 중용은 네 마음의 감정이라는 원석을 황금으로 만들어준다는 연금술의 현자의 돌과 같은 것이란다. 어때, 마법같지 않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