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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zyvision Nov 17. 2023

레비일기 : 가오픈했습니다.

가오픈즈음의 기록 

7월 가오픈을 시작으로 우리는 근무표를 만들었다. 주중과 주말 출근일을 적어 캘린더에 등록했다. Q와 나만 둘이 있는 것이 아직 불안한 터라 Y는 안심이 될 때까지 반강제로 레비의 NPC가 되었다.  


주변에 유난에 유난을 떨어서인지 가오픈을 시작한다는 공지를 올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친구들이 자리를 채웠다. 자꾸 익숙한 얼굴들이 오다 보니 놀고 있는 건지, 운영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몸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오후 12시부터 저녁 11시 넘어까지 일해야 했던 첫 주말에 나는 몸살이 났다. 딱딱한 신발을 신은 게 문제였나? 와인바와 가게 운영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 일주일이며 적응된다며 위로했다. 


그래, 분명 그럴 것이다. 적응이 너무 되어버려서 이때의 감정이 가물가물해지는 순간마저 올 것이다. 그래서 이 싱숭생숭하고 낯선 기분이 아련한 추억이 되는 시점이 올 것이라고 되뇌었다. 어쨌든 지금은 앞에 쌓여있는 설거지를 부지런히 할 때였다. 


아주 작은 요리를 내어도 설거지거리는 빠르게 쌓인다. 그리고 중간중간 나눠 부지런히 정리하면 또 빠르게 정리된다. 설거지한 그릇을 닦아서 찬장에 채우는 기분은 단순하지만 효능감을 느끼게 해 줘서 마음에 든다. 


요리를 하고 나면 빠르게 정리를 하는 게 다음 손님을 맞이하기에 좋다. 마음이 급하더라도 몸은 천천히 움직이면 부딪히거나 실수를 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혹여나 와인잔을 깨버리는 불상사를 발생시키지 않기 위해 나는 머릿속으로 천천히, 천천히를 중얼거렸다.


Y가 주중에 휴가를 쓰며 열심히 시음회를 다니며 찾아온 와인들로 냉장고를 채웠다. 각 와인의 특색을 알 수 있게 종이에 적어 라벨을 달고 가격을 적었다. 


와인과 함께 할 음식들도 정해졌다. Q와 내가 Y네 집에 놀러 가서 먹자고 소리치던 요리에서 착안한 몇 가지 메뉴들이 노란 메뉴판을 채웠다. 메인디쉬라 할 수 있는 3개의 메뉴 앞에 우리 각자의 이니셜이 자리했다.


Y. 새우 세비체 

Q. 들기름 파스타

J. 마라 토마토 미트볼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메뉴들이었다. 아래에는 탄생비화(?)까지 적혀있었는데, Y가 진지하게 여기에 적을 문구를 고민하는 장면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왔다. 각자 참 다른 것을 좋아하는데, 다른 것들도 다 좋아하는 교집합이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더 다행인 것은 우리의 취향을 손님들도 좋아해 줬다는 사실이다. Y의 오랜 고뇌와 고생이 보답받는 것 같았다.


그리고 드디어, 워크인 손님이 방문했다. 지인도 아니고, 소개받은 것도 아니고, 그저 어쩌다 레비를 찾은 분들이었다. 여기는 도대체 공사는 끝난 거 같은데, 문은 언제 열리나? 하고 궁금했다며 웃으셨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며 머쓱하게 대답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낯선 손님들이 낯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워크인 손님 대부분의 일상 동선 어딘가에 레비가 있었다. 우리는 가끔씩 지금 오신 손님, 골목 앞에 강아지랑 몇 번 지나가셨던 분 아니야? 아, 저번에 가족끼리 걸어가셨던 분 같은데?라고 소곤거렸다. 그렇게 손님들이 하나, 둘 레비에 방문하기 시작했다. 


2023.07.05 레이지비전의 첫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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