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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Aug 23. 2023

나는 완전체 엄마다.

엄마 8년 차, 나는 내 아이들을 위한 완전체 엄마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2016년 여름은 폭염으로 푹푹 쪘다. 초여름에 출산을 한 나는 우리집 현관문 도어록이 띠리링 울리기를 하루종일 기다렸다. 낮에는 친정엄마가 아기를 보러, 나를 도와주러 자주 방문하셨기 때문에 기다릴 사람이 있었다. 친정엄마가 오시면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아이를 맡기고 집 앞 이디야에 가서 아이스 카페라떼를 마셨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면 이제는 남편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어른인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루종일 갓난아기만 들여다보고 있는 하루하루가 무료하고 지루했다.


2018년은 내내 몸이 무거웠다. 2월에 임신사실을 알고 10월에 출산, 그리고 출산 이후에는 애를 계속 안고 집에 있으니 몸이 가벼울 새가 없었다. 두 돌 남짓인 첫째는 말이 늦게 틔였다.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와 단 둘이 있을 때면 어떤 순간은 숨이 콱 막혀서 아이가 미워 보이기도 했다. 회사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아이를 돌보고 주말에는 독박육아. 얼마 있지도 않은 친구들은 이미 다 떨어져 나갔다. 뱃속에는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쁘고 순한 아이와 함께 있음에도 나는 참 외로웠다.


둘째가 태어나고서는 외로움 따위는 개나 줘 버리게 됐다. 눈코 뜰 새 없이 몰리는 돌봄 노동. 아, 외로움도 심적 여유가 있어야 느끼는 것이었구나. 친정엄마가 많이 도와주셨음에도 모든 것이 여의치가 않았다. 첫째 때는 천기저귀를 썼었는데 둘째 때는 언감생심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 모든 것이 조금이라도 더 수월해야 내가 멘탈을 잡을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이때의 기억이 별로 없다. 사람은 물리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에는 기억을 통째로 잊어버리기도 하나 보다.  


엄마로서 산 7년 동안 내가 나에게 가진 정서는 나는 참 부족한 엄마라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 혼자 할 수 없는 갓난아기를 키울 때에는 아이라는 생명이 주는 그 막대한 책임감에 질식할 것 같았다. 나는 우주 속에 한 점일 뿐인데 아이의 존재감은 나의 우주를 가득 채웠다.


아이들이 점점 자라면서 손이 덜 가기 시작해도 여전히 나는 힘들었다. 특히 충동성 그 자체인 둘째를 키우는 것은 나에게 시험대를 오르내리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시험대에 통과하지 못한 날이 많았다. 화도 내보고 소리도 질러보고 무시도 해 봤지만 아이에게 닿을 수 없었다. 아이는 나와 전혀 다른 언어를 구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 뽀뽀를 득달같이 쫓아가 억지로 돌려세우면서 눈을 마주치는 순간 나는 항상 좌절감을 느꼈다. 내가 이 아이를 대하는 방법에 대한 답을 영영 찾지 못하면 어쩌지?


천성이 순하고 정적인 첫째의 문제는 자라면서 도드라졌다. 둘째가 다섯 살만 되어도 훨씬 수월할 것이라 하여 나는 아이들이 그만큼 크기를 계속 기다렸다. 그런데 아이가 그만치 자랐음에도 나는 남보다 유독 힘든 것 같은 이상한 상황에 맞닥뜨렸다. 둘째가 자라면서 충동성의 정도가 약해지는 만큼 첫째가 딱 그만큼 나를 어렵게 했다.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 것이 둘째의 성향이라면 첫째는 아무리 제지하고 타일러도 행동을 수정하지 않았다. 둘째는 뭔가에 꽂히면 어떤 것도 들리지 않는 타입이고 첫째는 자기가 꽂히는 일에 대한 욕구를 누르지 못해 하지 말라는 부모의 지시를 튕겨냈다. 둘째에 대해서는 나의 부름을 인지하지 못하는데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여전히 힘듦에도 아이에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첫째에게는 매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 엄마가 하지 말라는데 계속하는 거야?"라고 하면 첫째는 "아니야, 하는 거야."라는 식으로 응수하며 계속했다. 화를 좀처럼 내지 않는 남편조차도 빈번히 아이에게 화를 냈다. 우리 부부가 아이의 행동을 제한하는 기준은 다소 낮다. 그게 동생이든, 친구든,  모르는 사람이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면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커갈수록 점점 더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화에 잠식됐다.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나를 돌아보면서 나에게 통제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 불안감이 치솟고 이 불안감이 분노로 연결된다. 충동성을 각자의 방식으로 발현하는 아이 둘을 독박으로 데리고 다니는 것은 이런 나에게 매우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충동성과 관련해 공부를 하다 보니 어른인 나에게도 충동조절에 대한 이슈가 다소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화를 참는데도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의 에너지를 쓰는 것이었다.


첫째는 묵직한 농구공처럼 이리저리 굴러 다니며 자기를 제지하면 그 묵직함만큼 반동이 크다. 둘째는 이리저리 튀어 다니는 탱탱볼이다. 둘째를 잡기 위해서는 사방으로 뛰어다녀야 한다. 굴러가는 농구공을 잡으려고 돌아보면 탱탱볼이 저기에서 사방으로 튀어 다니고 있고 탱탱볼을 잡으려고 하면 농구공은 저쪽으로 데굴데굴 굴러가고 있다. 막막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일단 소리부터 질러댔다. 농구공과 탱탱볼이 애타는 나를 발견하고 제발 멈춰 주길 바라면서.


다행히도 나는 이유를 깨닫게 되면 감정조절이 가능해진다. 알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어서 문제의 원인을 인지하면 불안도가 낮아진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관찰하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것은 엄마로서는 꽤 훌륭한 자질이었다.


7년간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넘어지고 구르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고민하고 생각하며 아이를 대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다소 공감능력이 부족하지만 영리한 첫째는 기분파이다. 좋은 기분이 유지가 되면 동생을 괴롭히지 않는다. 그래서 칭찬 폭탄을 날려야 한다. 다만 잘못을 했을 경우에는 단호하게 잘못만 지적할 것. 잔소리 절대 금지. 감정 중시형이며 자극에 예민한 둘째는 빼액 울고 있을 때는 일단 안아서 진정할 때까지 토닥여줘야 한다. 둘째의 마음을 대화를 통해 읽어주면서 둘째는 자신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타인의 마음도 토닥여주는 아이가 되었다.


아이를 키운 지 8년 차에 나는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있어 좋은 엄마다.

부족한 내가 이렇게 애를 쓰고 있다. 언젠간 아이들도 알아 주겠지. 지금은 나라도 알아 주자.


너희들을 이렇게 계속 관찰하고 너희들에 대해서 오래 생각하는 사람이 또 어디 있겠니?

엄마는 너희들에게 완전체야.


대단이가 찍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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