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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Aug 29. 2023

걱정 선풍기, 걱정을 날려줘!!!

엄마 말은 귓등으로 듣는 줄 알았는데

대단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속마음을 이야기하는데 서투르다. 감정이나 욕구를 표현하는 것은 거침이 없는데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에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잘못을 지적할 때에도 "절대 그러지 마!" 하면 "절대 그럴 거야~"라는 식으로 응수하기 일쑤다. 내 말은 귓등으로 듣는 것이구나. 부글부글 내 속의 양은냄비가 또 끓어오른다.


하교 후 아이가 던져 놓은 책가방 속을 열어 보면 가끔 아이 마음을 가늠할 수 있는 보물들이 숨겨져 있곤 하다. 교실이나 돌봄 교실에서 그동안 쌓아 놨던 작업물들을 가져오곤 하는데 어제는 아마도 한여름에 만들었을 걱정선풍기가 발굴이 됐다.  



열심히 색칠을 하면서 선풍기를 완성하고는 걱정 쓰는 것을 깜빡했는지 걱정은 선생님의 글씨체다. 처음에는 '뭐야, 이거 또 안 한다고 한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선풍기 바람날개도 총천연색 칼라로 칠한 것을 보면 꽤나 공을 들였다. 무엇보다 걱정이 너무나 대단이의 것이었다.


"태권도가 어려워서 걱정이야."

"친구들과 자꾸 싸워서 걱정이야."

"글씨를 잘 쓰고 싶어."

"동생이 나를 자꾸 때려서 힘들어."


"태권도가 어려워서 걱정이야."

몸치 대단이에게 태권도는 쉽지 않다. 집에서도 가끔 자기는 몇 장까지밖에 못 나갔는데 자기보다 늦게 들어온 친구보다 느리다고 이야기한다. 종종 이야기하면 매우 신경을 쓰는구나 할 텐데 매우 가끔 얘기하길래 그다지 의식의 흐름을 지배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척척 진도를 빼는 친구들과 자꾸 비교가 되나 보다. 그러면서도 호기롭게 구청장배 대회를 나간다고 했구나. 이번에 열심히 해서 태권도가 쉽게 느껴지면 좋겠다.


"친구들과 자꾸 싸워서 걱정이야."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걱정이다. 자기 중심성이 다소 보이고 눈치도 살짝 떨어지는 대단이. 친구들의 실수가 자기 눈에 재밌다고 생각하면 파하하하하 웃어댄다. 상대방의 기분은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친구들과 부딪히는 일들이 대단이에게도 매우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어떻게 하면 친구의 마음을 읽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엄마도 참 고민이 많아. 오늘은 '아홉 살 마음 사전'을 읽어 봐야겠다.


"글씨를 잘 쓰고 싶어."

대단이의 글씨를 지적하는 이유는 엄마 눈에 대단이의 모습이 잘 쓸 수 있는데도 멋대로 흘려 쓰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대단이는 그런 엄마의 지적을 귓등으로 흘려듣고 엄마는 몇 번 반복해서 이야기하다 폭발하고 대단이의 글쓰기는 우리 집 도화선이다. 그런데 대단이는 글씨를 잘 쓰고 싶었구나. 잘 쓰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거였니? 엄마가 미운 말을 하면 더더욱 잘 쓰고 싶지 않았나 보다. 쓰기 싫은 글씨 참고 쓰는데 내 맘대로 하면 뭐 어때?라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고. 아, 어렵다. 즐겁게 풀어 가자. 화내지 말고.


"동생이 나를 자꾸 때려서 힘들어."

너도 때리잖아. 네가 먼저 때리는 거 아니었냐? 하고 싶지만 한 성깔 하는 뽀뽀의 대거리도 대단이에는 버거운 문제였나 보다. 자기도 때린다는 사실에까지는 아직 생각이 못 미치고 동생이 나를 때려서 나를 힘들게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아, 내 안의 양은냄비가 다시 보글보글 끓어오르려고 한다. 다시 생각해 보면 뽀뽀가 큰 소리를 지르는 것도 귀가 예민한 대단이에게는 매우 견디기 힘든 부분일 것이다. 소리를 지르는 것 역시 자신을 때리는 것의 연장선상으로 생각할 수 있다. 동생 때문에 자기는 항상 피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매번 강화하는 것이다.


걱정 선풍기가 걱정을 모두 날려 주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대단이의 걱정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고 엄마의 고민도 계속된다. 무심코 했던 말들이 아이의 마음에 가시처럼 박혀 걱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엄마 마음도 아파진다.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아이를 굳이 불러다가 토닥토닥 안아 주었다. 모든 것이 다 잘될 거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아이는 알아 들었는지 귓등으로 흘려 들었는지 이내 자기가 하던 일로 달려간다.


아이가 학교에서 가져오는 작업물들 그냥 버리지 마세요. 찬찬히 바라보면 아이마음의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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