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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Mar 03. 2024

4줌마 갓생살기를 시작하며

40대 아줌마도 갓생살 수 있거든?

"이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

허탈하게 웃음 짓는 친구를 그저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불혹이라는 고개를 넘어 40대의 어느 자락에 자리 잡은 우리. 지금 이 시간이 우리 인생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모든 것이 막연했던 20대에 상상했던 나의 40대. 눈가에 주름은 자글자글 할지언정 세련된 애티튜드를 몸에 딱 맞는 옷처럼 입고, 나를 위한 시간을 어떤 제약 없이 누린다. 거실에 장식해 둘 생화 한 다발 같은 나를 위한 작은 선물에 인색하지 않다. 젊은 날을 치열하게 살다 보면 40대에 여유로움은 차고 넘칠 줄 알았다.


현실 40대가 되어보니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지출은 나날이 늘어만 가고 그에 맞춰 나의 비주얼은 점점 척박해진다. 아침에는 머리카락 말릴 틈도 없이 애들 등을 떠밀며 집을 나서고 저녁노을이 어슴푸레해질 때면 학원차량이 아이들을 내려줄 시각에 닿기 위해 전력질주를 한다. 한숨 돌릴 틈 없이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밥이 뜸을 들이는 5분의 짬에도 물티슈로 방바닥을 훔치는 내 모습은 세련은 커녕 억척 그 자체다. 마음과 정신은 핫플레이스를 찾던 아가씨 때와 똑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니 거울 속에는 아줌마가 서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지극히 보통의 40대 대한민국 아줌마, 4줌마이다.


나에 대해 완전히 알기도 전에 엄마가 되어버린 나, 미혹되지 않는다 하여 불혹이라는데 작은 바람에도 한없이 흔들리는 나. 바쁜 일상에 치이며 부지런히 살고 있음에도 나를 위해 보내는 시간은 없어 나에 대한 미안함이 몰려오기도 하고 행여 아이의 문제로 기관에서 전화라도 올 때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에 괴로워진다.




설거지를 하던 손을 잠시 멈추자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내 인생에서 지금 이 시간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일까?'


그 순간 땡 하고 종이 울리며 내 귓가에 메아리가 울려 퍼진다. "갓생! 갓생! 갓생!" 갓생? 어디선가 주워들었던 말인데? 정확한 뜻도 잘 모르지만 왠지 의욕을 뿜뿜 분출하게 만들던. 한눈 잠시 파는 사이에도 세상이 몇 바퀴씩 도는 요즘, 엠제뜨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갓생'이라는 단어가 아직도 유효한가?


포털 검색창에 '갓생'을 검색해 보았다.


갓생 : 갓생이란 신을 뜻하는 영어 ‘갓(God)’과 ‘인생’을 합친 말로, 현실에 집중하면서 성실한 생활을 하고, 생산적으로 계획을 실천해 나가는 이른바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의미한다. 주로 MZ세대가 커뮤니티 등에서 사용하는 신조어다. (출처 : 다음 백과)


이런 뜻이었구나. 보다 보니 내가 못할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애들 등하원시간을 아슬아슬 지켜대며 회사에서 혼이 나가게 일하고 집에 와서는 애들한테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방바닥을 훔쳐대는 나보다 현실에 집중하면서 성실할 수 있을까?


생산적으로 계획을 실천해 나간다. 애들 먹일 과일과 네 식구가 일용할 밀키트는 떨어져서는 안 되니 철두철미하게 마트컬리와 육아시스를 오가며 쿠폰과 특가를 저울질해 아주 생산적으로 장을 보곤 한다.


타의 모범? 초등학교 생활통지표 이후에 내 인생에서 등장한 적이 없는 말이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타의 모범이 되고자 한 적이 없었다. 그저 온전히 나로 살아가는 법을 익히기에도 버거운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 나서, 나만 바라보는 네 개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강하게 바라는 무언가가 생겼다.

"내 아이들에게 떳떳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대체로 뚱한 표정인 내가 아침인사를 할 때는 웃으려고 노력한다. 카페나 음식점에 가면 내가 쓴 냅킨들은 한데 모으거나 쓰레기통에 버린다. 좋은 일을 하면 언젠가는 좋은 일로 돌아온다는 믿음이 생겼다.


나 아닌 타인을 위해 흘러가는 것 같던 나의 시간들. 이 시간을 나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시간'으로 의미를 부여하니 내 인생 그 어느 시간보다 의미 있어졌다. 어제보다 한 톨만큼이라도 더 좋은 사람이 되어 내 아이들에게 '평범하지만 좋은 삶'의 가치를 보여주고 싶다.


이만하면 4줌마도 충분히 갓생살 수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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