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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복 Jul 26. 2023

키 작은 여름날

막막하다.

앞으로 나설 길을 모두 잃었다.

밖을 내다보던 눈동자가 돌아서서 안을 본다.

마음이 뒤돌아 선다.

거기 지난날 지나왔던 길들이 보인다. 익숙하다. 추억의 냄새 따라 걸으니 콧노래도 나온다.

다시 돌아가기 싫은 마음은 다리를 건너자마자 돌아갈 다리를 끊어버린다.

더러는 안 좋은 기억을 만나 쌍욕을 해보고 화를 버럭버럭 내보기도 하지만, 더 따뜻한 추억을 향해 길을 간다. 내리막 길이라 쉽다. 그러다가 딸을 낳기 전까지 기억이 떠내려간다.


엄마 눈동자가 총기를 잃은 지 오래,

눈을 덮은 흐릿한 간유리는 더 두꺼워졌다.

나를 한눈에 알아보지 못한 지 오래,


환자로 대하라지만 엄마다.

엄마로 대하지만 나를 더듬는 눈만 가진 환자다.




키 작은 여름날

딸인지 며느리인지
뒤돌아서 뭐라고 야단치대요
그늘처럼 그림자처럼 납작 숙인
두툼한 스웨터 입은 노인이 따라가고요
또 돌아서 뭐라고 하는데

땀이 뻘뻘 나는 여름날이었는데
속상하다고 우는 매미 소리 때문에
얼굴 가득 번들거린 게
땀이 아니라 눈물이었다는 걸
한참 지난 후 알았지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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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가로등만큼 내려앉아 지나는 사람들 등을 휘게 만드는,

무거운 날이다.

무더운 날이다.


기억이 얼핏 돌아왔는지,

할머니 얼굴이 온통 번들거렸다.

딸에게 미안해선지,

자기에게 미안해선지,

땀인 눈물인지, 

절벅절벅 물 밟는 소리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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